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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인싸] 꼭 ‘청년’ 대변인이어야 할까?

중앙일보

입력

‘여의도 인싸’는 국회 안(inside)에서 발생한 각종 이슈와 쏟아지는 법안들을 중앙일보 정치팀 2030 기자들의 시각으로 정리합니다. ‘여의도 인싸’와 함께 ‘정치 아싸’에서 탈출하세요.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 두번째)가 지난달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청년미래연석회의 발대식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 두번째)가 지난달 1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청년미래연석회의 발대식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청년대변인을 뽑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청년대변인 공개 오디션 공고를 내겠다고 밝혔습니다. 홍익표 민주당 수석대변인이 “청년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고자 청년대변인을 선발하기로 했다”고 취지를 전했습니다. 민주당 기준의 청년은 35세 미만입니다. 당은 7월 말 모집 공고를 내고 공식 유튜브 채널인 ‘씀’을 통해 공개 오디션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선발된 남녀 각각 1명은 상근부대변인으로 활동하게 됩니다. 기존에 있던 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소속이 아닌 중앙당 차원에서 청년 몫의 대변인 자리를 신설하는 겁니다.

국회에서 ‘대변인’은 당의 공식적인 목소리를 대변하는 창구로 통합니다. 민주당은 이번 모집을 계기로 당내에서 청년들의 목소리가 커지길 기대합니다. 앞서 바른미래당은 지난해 12월, 바른토론배틀 시즌2에서 우승한 김홍균(22)씨와 준우승자 김현동(20)씨를 청년대변인으로 임명했습니다. 자유한국당도 지난 5월, 2030 청년 부대변인 10명을 공개 오디션 방식으로 선발했습니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달 22일 오후 충청북도 단양 대명리조트에서 열린 '2019 자유한국당 청년전진대회'에 참석, 참가자들과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가 지난달 22일 오후 충청북도 단양 대명리조트에서 열린 '2019 자유한국당 청년전진대회'에 참석, 참가자들과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여야가 앞다퉈 청년대변인 자리를 신설하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선 왜 굳이 ‘청년’ 대변인이란 명칭을 붙이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청년이란 틀 안에 젊은 정치인을 가둘 수 있단 우려 때문입니다. 최근 청년 몫으로 배정된 정의당 부대표 자리에 선출된 박예휘씨는 “청년이란 대표성에 갇혀 청년 문제만 말하게 될 수 있다. 여러 의제를 가진 주체로 청년을 인정하고 다양한 정치 영역을 맡기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특히 박 부대표는 정치권에서 ‘청년’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우린(기존 기득권 정치인) 큰물에서 현실 정치를 할 테니 너희는 청년 문제를 이야기하라며 의미를 축소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는 “청년 몫으로 자리를 만들더라도 동등한 대변인으로 청년에게 마이크와 연단을 줘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의 말처럼 정의당은 곧 청년 몫의 대변인 자리를 신설할 예정이지만 앞에 ‘청년’이란 수식어를 따로 붙이지 않을 계획이라 했습니다.

청년기본법 제정을 위한 청년단체 연석회의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년기본법 연내 국회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국회 청년미래특별위원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청년기본법안이 발의 6개월동안 논의가 미진한 채 계류돼 있다며, 조속한 국회 통과를 요구했다.[뉴스1]

청년기본법 제정을 위한 청년단체 연석회의 회원들이 지난해 11월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년기본법 연내 국회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이들은 국회 청년미래특별위원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청년기본법안이 발의 6개월동안 논의가 미진한 채 계류돼 있다며, 조속한 국회 통과를 요구했다.[뉴스1]

그렇다면 청년대변인을 뽑지 말아야 하는 걸까요? 박 부대표는 “쿼터(할당)를 주는 것과 그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다르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쌓아온 시간과 정치적 배경을 볼 때 청년들이 오랫동안 당 생활을 한 사람들과 같은 표를 받을 수 없다”며 “40·50대 남성이 (국회에서) 과대 대표되고 있는 상황에서 가만히 내버려 두면 (청년들이) 알아서 성장할 수 있다는 건 안일한 생각”이라고 했습니다. 실제 20대 국회가 시작된 2016년, 당선인 평균 연령은 55.5세로 역대 당선인 평균 연령 중 최고령에 해당합니다. 이 중 30대는 2명, 20대는 1명에 그쳤습니다.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 구조에선 일회성 이벤트만으론 실효성 있는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민주당은 지난 2월부터 ‘청년미래기획단’을 출범시키고 “20대를 위한 실질적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20대, 특히 남성에서 국정 지지도가 저조하다는 조사가 쏟아질 무렵이었습니다. 이후 당·정·청 회의 끝에 ▶청와대 청년소통정책관 신설 ▶민주당 청년미래연석회의 발족 등을 이어갔지만, 눈에 띄는 해법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지난 4월엔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서른다섯 청년이 눈물을 쏟기도 했습니다.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시민사회단체 초청 간담회에 참석한 엄창환 전국청년네트워크 대표는 “정권이 바뀌고 청년들이 수많은 기대를 했지만 아직도 정부가 청년 문제를 인식하는 방식은 단편적이다. 누구와 소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지난 4월 1일 청와대서 열린 시민사회단체 간담회에서 엄창환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청년실업 등의 발언 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경실련, 참여연대,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소비자연맹 등 진보, 보수, 중립성향 단체와 정부 관계자를 포함한 100여명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1일 청와대서 열린 시민사회단체 간담회에서 엄창환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청년실업 등의 발언 후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경실련, 참여연대,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소비자연맹 등 진보, 보수, 중립성향 단체와 정부 관계자를 포함한 100여명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결국 관건은 청년이 제도권 정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느냐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년’을 외치던 당들은 막상 공천 시기가 되면 슬그머니 발을 빼곤 합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청년, 노동 분야는 해당 전국위원회에서 선출한 2명의 후보자를 우선순위에 안분한다’는 당헌·당규를 무시하고 청년 몫의 비례대표 공천을 16번과 24번에 배치했습니다. 당시 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중 13번까지가 당선돼 둘 다 공천에서 탈락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청년들은 이런 자리라도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현 정치판에서 청년 문제는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정예준 민주당 청년위원회 소속 대변인은 “지금은 미약해도 조금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청년의 목소리를 다룰 수 있는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또다시 청년 구색갖추기란 오명을 얻지 않으려면 정치권 모두가 한 번쯤은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요.

이우림 기자 yi.wool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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