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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예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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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문현경 기자 중앙일보 기자
문현경 탐사보도팀 기자

문현경 탐사보도팀 기자

‘취미 투어’나 ‘취미 쇼핑’쯤 될까. 이삼십대 직장인들이 주 고객이라는 ‘원데이 클래스’ 열풍 말이다. 어플리케이션이나 문화센터를 통해 재미있어 보이는 수업을 골라 가능한 날 하루, 짧게는 한 시간에서 길게는 서너 시간을 보내고 오는 거다. 종류는 마카롱·그릇·조명 등 각종 만들기부터 서핑·카약·등산 같은 스포츠, 드럼·보컬·피아노 등 악기까지 수천가지다.

사실 클래스의 상당수는 이전에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이었다. 전인교육의 낭만이 남아있던 1990년대의 어린이에게 ‘수영 학원 끝나고 미술 학원, 미술 학원 끝나고 바둑 학원’ 식의 스케줄은 일상이었고 학교에선 사과 그리기, 반바지·의자 만들기도 가르쳐 줬다. 하지만 그땐 “안 하면 안 돼요?”를 외쳤다. ‘혹시 모를 재능을 찾아서’ ‘점수를 매기기 위해서’ ‘잘해야 하는’ 활동엔 과정의 재미가 표백되는 법이다.

학년이 올라가고 ‘국영수’를 3부 요인, ‘국영수사과’는 5부 요인처럼 예우해야 하는 때가 되면 ‘음미체’는 회 밑에 깔리는 천사채 취급을 받는다. 경제가 호황이면 취미는 대학에서 위상을 복권하지만, 취업난이 심해지면 그마저도 힘들다. 대학 캠퍼스 안 다른 건물들이 대기업의 이름을 달고 더 높고 번쩍이는 건물로 새로 태어날 때 동아리회관은 가장 낡은 건물로 남아 쓸모를 걱정한다. 장구를 치고 기타를 치고 합창을 하는 게 취업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설명하지 못하면 문을 닫기도 한다. 취미란 건 그렇게 이력서 속, 특기란 옆의 또 하나의 막막한 빈칸으로 박제될 뻔했다.

시켜서 하기 싫고, 하고 싶어도 못 했던 시간을 거쳐 마침내 시작된 직장인들의 ‘취미 찾기’ 열풍은 그래서 더 값지다. 해야 하는 일, 잘해야 하는 일, 남들만큼은 해야 하는 일들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안 해도 되는 일, 못 해도 되는 일, 내가 재미있으면 그만인 일을 찾아보려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어른들은 우리에게 “편식하면 안 돼요” “배곯으면 어떡할래”를 말했지만 우리는 “입맛에 맞는 재미(趣味)를 찾아봐라”란 말도 해줄 줄 아는 어른이 되지 않을까.

문현경 탐사보도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