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실세’ 최경환 옥중 편지 “정치적 희생양 자임…제게 침 뱉으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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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환 전 자유한국당 의원. [연합뉴스]

최경환 전 자유한국당 의원.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에서 친박(박근혜)계 좌장격이던 최경환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23일 “박 전 대통령 탄핵 문제로 더 이상 당이 발목 잡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최 전 의원은 지난 11일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 1억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로 징역 5년과 벌금 1억5000만원의 형이 확정되며 의원직을 상실했다.

수감 중인 최 전 의원은 이날 오전 한국당 소속 의원 전원에게 보낸 A4용지 4장 분량의 편지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저 같은 사람이 제일 큰 책임이 있고 당시를 함께했던 우리 모두가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 않겠나”라며 이같이 밝혔다.

특히 최 전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을 잘못 보필해 탄핵에 이르게 하고, 탄핵을 막아내지 못한 책임은 누구보다 저에게 크다”며 “박 전 대통령께서 탄핵을 당한 그 순간부터 저는 영원한 정치적 죄인으로 생각하고 스스로를 유배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옥살이는 그에 대한 업보라고 생각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꿋꿋이 견뎌내려고 한다”고 적었다.

최 전 의원은 “더 이상 당이 발목을 잡혀서는 안 된다”며 “만일 정치적 희생양이 필요하다면 제가 기꺼이 자임하겠다. 당이 단합해 미래로 나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저에게 침을 뱉어 주시라. 기꺼이 받겠다”고 밝혔다.

최 전 의원은 아울러 최근 자신의 의원직 상실을 확정 지은 대법원 판결을 거론했다. 최 전 의원은 “저는 국정원의 예산을 봐주고 뇌물을 받은 적이 결코 없다”며 “국정원 예산이 어떻게 편성됐는지는 이번에 재판을 받으면서 알게 됐다. 그런데 어떻게 국정원 예산을 봐주고 뇌물을 받을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최 전 의원은 “2014년 정기국회 당시 세월호특별법 문제로 국회가 마비 상태에 빠지자 저는 경제활성화 법안과 예산안 법정기일 내 통과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며 “이런 저를 지원하기 위해 국정원장이 국회 대책비로 쓰라며 떠안기다시피 1억원을 보내왔고 이를 전액 국회 활동에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 명목으로든 돈을 받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를 받아 국정수행활동에 쓴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죄가 된다면 국고손실 등으로 처벌받는 것은 몰라도 뇌물죄로 처벌받을 일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현실의 법정에서는 저의 호소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진실의 법정, 역사의 법정에서는 실체적 진실을 받아들이리라 생각된다”고 썼다. 이어 “매년 1조원 이상 사용된 특활비에 표적을 정하지 않고 전부 조사한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처벌돼야 할지 모를 일”이라고도 주장했다. 최 전 의원은 자신을 ‘국정원 특활비 제도의 희생양’이라고 표현한 뒤 “꼭 제도 개선에 나서주길 간곡히 부탁한다”며 “국정원 특활비 제도의 희생양이 되어 정치판을 떠나는 사람의 마지막 부탁이라 생각하고 힘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최 전 의원은 편지 말미에 ‘2019년 7월 한여름 어느 날 의왕에서 최경환 올림’이라고 적었다.

한영혜 기자 han.younghy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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