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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 발생 100일 넘었는데 ….”수사 결과는 깜깜 무소식

중앙일보

입력

속초·고성 산불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가 16일 오전 강원 춘천시 강원지방경찰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수사 결과 발표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속초·고성 산불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가 16일 오전 강원 춘천시 강원지방경찰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수사 결과 발표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3000만원이 넘는 공구가 다 타버려 100일 넘게 아무 일도 못 하고 있는데 어떠한 보상도 받은 게 없습니다.” 16일 오전 산불 수사 결과 발표 촉구를 위해 강원지방경찰청을 찾은 마수일(63)씨의 하소연이다.

산불피해 주민들 16일 강원경찰청서 집회 #주민들 "수사 결과 없이는 피해조사 받을 수 없다" #경찰 조간만 10여명 신병처리 결정할 방침

40년 넘게 목수로 일해 온 마씨는 지난 4월 발생한 강원 고성·속초 산불로 공구가 모두 타버렸다. 그는 당시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 신축 빌라 현장에서 일하는 중이었고, 창고엔 건축에 필요한 공구를 보관 중이었다. 마씨는 “이재민도 소상공인도 아니다 보니 손해는 봤지만, 재난지원금이나 국민 성금 등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며 “한참 일이 많을 시기인데 공구를 살 수 없다 보니 3개월 넘게 일을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씨처럼 산불 이후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속초·고성 산불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 주민 60여명은 이날 강원지방경찰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마에 ‘결사투쟁’ 띠를 두른 이들은 산불 피해 사진과 피켓을 들고 수사 결과 발표를 외쳤다. 이들이 타고 온 트럭엔 산불 당시 타버린 차도 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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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발생한 고성ㆍ속초 산불 당시 불에 탄 이영숙(68·여)씨의 아로니아 냉동고. [사진 독자제공]

지난 4월 발생한 고성ㆍ속초 산불 당시 불에 탄 이영숙(68·여)씨의 아로니아 냉동고. [사진 독자제공]

아직 집, 공장 등 철거 못 한 주민 30% 달해

산불 피해를 본 한 주민은 애처로운 목소리로 피해 사실을 털어놓기도 했다. 고성군 토성면 원암리에서 아로니아 농사를 짓는 이영숙(68·여)씨는 아로니아를 보관하는 냉동고와 선별기 등이 불에 탔지만, 아직 한 푼도 보상받지 못했다. 이씨는 “불에 타지 않는 아로니아를 오는 20일께부터 수확하려고 4000만원이 넘는 빚을 내서 냉동고와 선별기 등을 샀다”며 “정말 힘없고 나약한 우리 같은 사람을 도와달라”고 울먹였다.

속초·고성 산불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는 “한전에서 보상을 하지 않는 상태에서 경찰이 6월 초까지 수사 결과를 발표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렸다”며 “수사 결과 발표 없이는 손해사정사의 피해조사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비대위는 “아직도 집, 사무실, 공장 등을 철거하지 못한 사람이 30%에 달한다”며 “철거를 하면 증거물 훼손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기에 아무것도 못 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장일기 속초·고성 산불 피해자 비상대책위 위원장은 “경찰 수사 결과 발표 이전에 손해사정사 조사가 이루어져 미리 피해액이 산정되면 수사 결과에 따라 보상금이 달라질 수 있다”며 “산불 피해 주민들이 제대로된 보상을 받으려면 수사 결과가 발표된 이후에 손해사정사 조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비대위는 집회 이후 경찰 관계자와 면담을 갖고 춘천지검과 강원도청 앞에서도 집회를 열었다.

속초·고성 산불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가 16일 오전 강원 춘천시 강원지방경찰청 앞에서 집회를 열어 피해주민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속초·고성 산불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가 16일 오전 강원 춘천시 강원지방경찰청 앞에서 집회를 열어 피해주민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연합뉴스]

5개 시·군 산불 피해액만 2651억원

대형 산불이 동해안을 휩쓸고 간 지 100일이 지났지만 피해 지역 주민 고통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산불 책임자 규명을 위한 수사는 마무리 단계지만 신병 처리 시기가 유동적이고 보상 문제도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수사를 지휘하는 검찰은 자치단체장의 공직선거법 재판을 동시에 처리하다 보니 산불 수사 기록 검토에 시간이 걸린다고 해명했다. 검찰과 경찰은 조만간 협의를 거쳐 피의자 10여명의 신병 처리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4월 4일 고성·속초, 강릉·동해, 인제에서 발생한 산불은 산림 2832㏊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이 불로 3명의 사상자와 1289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정부가 집계한 재산 피해액은 1291억1600만원이지만 집계에 포함돼 있지 않은 소상공인·중소기업 피해 신고액 1360억여원을 더하면 피해액은 2651억여원에 달한다.

강원도는 특별재난지역 선포 후 정부 지원계획에 따라 주택복구·소상공인 127억원, 희망 근로 지원 221억원, 도와 시군 특별교부세 재정 495억원 등을 지원했다. 현재 연수원 등에서 생활하는 이재민은 127명이고 친척 집 등 445명, 임시조립주택 578명,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대주택 368명이다.

춘천=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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