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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장관급 회담은 '북한 선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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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2일 제19차 남북 장관급회담 전체회의에서 북측 대표단장인 권호웅 내각참사가 "북의 선군정치가 남측의 안전을 도모해 주고 있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부산=송봉근 기자

장관급회담 테이블에 나온 북한 측 권호웅(내각 책임참사) 단장은 대포동 2호 발사 파문에 아랑곳 않는 태도였다. 미사일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면서도 억지스러운 북측 논리를 굽히지 않았다. 핵심은 북한의 미사일.핵개발 때문에 남한도 안전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면서 태연하게 쌀 50만t과 경공업 원료 제공 요구까지 내놓았다. 누구도 동의할 수 없는 억지 주장을 늘어놓으면서 필요한 건 다 받아내겠다는 의도가 역력했다. 북한 측이 장관급회담을 정치 선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비난성 분석이 회담장 주변에서 쏟아져 나왔다.

◆ 선군(先軍) 발언 파문=12일 전체회의는 남측 수석대표인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선공으로 시작됐다. 이 장관은 기조연설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해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의 단호한 입장을 전달했다. 추가 발사 같은 일이 벌어지면 상황을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점도 강조했다.

이어 기본발언에 나선 권호웅 단장은 "정세변화에 영향을 받지 말고 6.15 공동선언 이행으로 정세위협에 맞서자"고 운을 뗐다. 그는 발언 중간에 '선군(先軍) 정치'얘기를 불쑥 꺼냈다. 권 단장은 "선군이 남측 안전을 보장해 주고 광범위한 대중이 덕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사일.핵개발 덕분에 남쪽이 편안하게 지낼 수 있다는 얘기다. "미사일 발사는 군사훈련의 일환이며, 정당한 자주권 행사"라는 북한 외무성의 주장보다 훨씬 더 나간 발언이다. 이는 북한이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 이후 남북회담에서 "북의 핵우산 때문에 남측도 미국의 조선반도 핵전쟁 위험을 모면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북측이 남측의 반발이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주장을 한 배경에는 북한 군부의 힘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의 미사일 발사에 비판적인 남측 정서를 철저하게 외면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사일 발사로 강경해진 남측의 대북 여론이 이 발언으로 더욱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남북관계는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올라간 모양새다.

◆ 어처구니없는 북측 주장=권 단장은 1시간30분간 비공개로 진행된 전체회의에 앞서 언론에 공개된 수석대표 환담 상당 부분을 일본 비난에 할애했다. 그러면서 "6.15 시대에는 북과 남이 힘을 합쳐 우리 민족 자체를 지키고 보호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말했다.

이런 언급에는 미사일.핵 문제와 관련한 미국.일본 등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을 남한과의 민족공조로 맞서나가겠다는 판단이 깔린 것이다. 특히 미사일.핵 문제는 남북 간이 아닌 북한과 미국이 논의할 문제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일본에 대한 비난 수위를 올린 것은 미사일 문제와 관련한 노무현 정부의 대일 비판에 힘입은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또 북한은 국가보안법 철폐 등 네 가지 요구 사항을 제시했다. 눈에 띄는 것은 '체제와 존엄을 상징하는 성지(聖地)'에 대한 방북 참관 허용 요구다.

쌀.비료 지원 등은 논의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공언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쌀 50만t(수송비 포함 1750억원) 차관 제공을 요청했다. 지난달 경협추진위 때 철도 시험운행이 이뤄지면 주기로 한 비누.신발 등 경공업 원자재(750억원)도 다시 요구해 이 문제에 대한 집착을 보였다. 그러면서 북한은 추석을 계기로 한 이산가족 상봉 카드를 내놓았다. 인도적 문제인 이산가족 상봉을 조건화해 대북 지원을 얻겠다는 속셈이다.

부산=이영종 기자<yjlee@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bks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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