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폴인인사이트] 인터넷에서 취향을 나누던 그들이 이제는 만나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입력

폴인인사이트’ 외 더 많은 상품도 함께 구독해보세요.

도 함께 구독하시겠어요?

“취향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아주 미세하게 많이 쪼개질 것으로 생각해요. 미래 도시는 안전가옥 류의 수많은 옵션이 있는 곳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_김홍익 안전가옥 대표, 폴인 스토리북<도시살롱:도시가 라이프스타일을 바꾼다>중에서

&#39;모든 이야기들의 안식처&#39;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안전가옥은 장르 문학이라는 취향을 바탕으로 한 창장자들의 커뮤니티다. [중앙포토]

&#39;모든 이야기들의 안식처&#39;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안전가옥은 장르 문학이라는 취향을 바탕으로 한 창장자들의 커뮤니티다. [중앙포토]

[폴인을 읽다]개인의 취향을 지키며 넘어서기

한때 힙합 음악에 심취했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가히 주류 중 주류로 자리 잡았다고 말할 수 있죠. 하지만 제가 한창 힙합 음악을 찾아 듣던 90년대 말 2000년대 초는 아직 이 정도의 위치는 아니었습니다. 비주류에 더 가까웠고 제 주위엔 같이 비트를 쪼개며 프리스타일을 견줄 친구 한 명 없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같이 나눌 친구가 없다는 것은 정말로 외로운 일입니다.그때쯤 ‘카페’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오늘날 카페라고 하면 트렌디한 인테리어를 만끽하며 은은한 향이 퍼지는 커피를 즐기는 장소가 먼저 생각나지요. 당시 저에게 카페는 이보다 가상의 세계, 즉 인터넷 포털 사이트가 제공하는 비물질화된 커뮤니티와 같은 말이었습니다.

비록 현실 세계에서 저와 같은 취향을 나눌 누군가는 없었지만, 이 인터넷 카페 안에서는 수많은 동지와 선구자가 있었습니다. 그 속에는 힙합을 넘어 록과 일렉트로닉 음악, 그리고 각종 만화와 스포츠까지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는 취향의 파라다이스가 펼쳐졌습니다. 인터넷 카페가 카페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고지현 취향관 및 킷 스튜디오 대표는 폴인 스토리북<도시살롱:도시가 라이프스타일을 바꾼다>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살롱이라는 모티프를 가지고 온 것은 영화예요. 예전부터 ‘미드나잇 인 파리’라는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서 프랑스의 예술가가 모인 어떤 살롱에 강제로 초대받는 경험을 해요. 저 주인공처럼 저런 공간에 초대받고 싶다고 생각을 했어요.”

살롱, 즉 카페는 애초부터 각종 취향이 마주치며 피어오르는 곳이었고, 이와 같은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서비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던 거죠.

오프라인에 모여 각자의 취향·생각·지식을 공유하는 &#39;살롱문화&#39;를 재현한 취향관. [중앙포토]

오프라인에 모여 각자의 취향·생각·지식을 공유하는 &#39;살롱문화&#39;를 재현한 취향관. [중앙포토]

몇 년 사이, 온라인에 머물던 취향이 다시 오프라인 세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취향을 가진 사람을 초대하는 ‘취향관’과 “모든 이야기들의 안식처”라는 슬로건을 지닌 ‘안전가옥’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과거 살롱과 카페가 그러했듯 같은 취향을 지닌 사람을 직접 이어주던 장소가 오늘날 다시 주목을 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취향은 서로를 이어주는 가장 강력한 요소입니다. 음악이든 소설이든 공통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밤새도록 격렬한 논쟁과 공감을 만들 수 있죠. 반대로, 취향은 타인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데도 매우 유용하며 편리하기까지 합니다. 서로의 차이가 ‘개인의 취향’으로 정의되는 순간, 타인과 우리의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생깁니다.

개인의 취향은 논리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설명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머리로 이해할지 몰라도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누군가 ‘개인 취향이야’라고 말한다면 아무리 격렬한 논쟁 중이어도 모든 대화는 단절되지요. 더는 이어갈 말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때로 우리는 더이상 말하고 싶지 않을 때 혹은 누군가와 관계를 단절하고 싶을 때 종종 ‘취향 차이’라는 간편한 핑계를 댑니다.

폴인(fol:in)의 스토리북 <도시살롱: 도시가 라이프스타일을 바꾼다>의 표지. [사진 폴인]

폴인(fol:in)의 스토리북 <도시살롱: 도시가 라이프스타일을 바꾼다>의 표지. [사진 폴인]

이 같은 양면성을 지닌 개인의 취향이 다시 오프라인 세상으로 나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자신의 취향을, 온전히 이해받고 싶은 욕구 때문은 아닐까요. 실제로 ‘취향관’과 ‘안전가옥’ 은 특정한 취향을 주제로 삼습니다. 결국 이곳에 모이는 사람 들이 대개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이곳에 발을 딛는다는 것은 익명의 존재가 아닌 나 자신으로서 본인의 취향을 ‘커밍아웃’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공간들은 그런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는 것이고요. 홍주석 어반플레이 대표는 폴인 스토리북<도시살롱: 도시가 라이프스타일을 바꾼다>에서 콘텐츠로서의 취향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는 “이제 개인의 취향이 하나의 콘텐츠가 되고 그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오는 것 같다”고요.

그동안 엄연히 존재하고 있어도 드러나지 않았던 개인의 취향, 또 서로의 사이에 쉽게 벽을 세우는 취향의 문제, 이 같은 눈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이제는 우리 눈앞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각종 지위와 명함, 그리고 익명이 아닌 개인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취향의 공간에서, 각자 앞에 무수히 놓인 취향의 벽을 넘어선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죠. 이같은 새로운 실험의 공간을 통해 우리는 외롭고 고독한 도시의 삶에서 나를 채우는 활기를 얻을 수 있을까요. 과거 카페와 살롱이 그러했듯 말이죠.

이두형 객원에디터 folin@folin.co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