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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인인사이트] 당신도 '좋아요' 수를 세느라 잠을 못 이룬 적이 있나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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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인을 읽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사회에서 사는 법: 추락하기

페이스북에 글을 쓰고 ‘좋아요’ 수를 세느라 잠을 못 이뤘던 날이 있다. 여행지에서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느라 여행의 순간을 음미하지 못했던 적도 있다. 피드를 수없이 새로 고침 하면서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갑자기 새어 나온, 그 웃음은 나를 향하면서도 동시에 다른 이를 향한 것이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러고 있을지 생각해보니 웃픈 코미디였다. 만약 ‘좋아요’가 ‘사회적 신용등급’ 혹은 ‘자본’이 된다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갈까.

블랙미러 '추락' 편의 주인공 레이시는 5점 만점에 4.2점의 평점을 가졌다. 하지만 4.5점이 넘어야 드림하우스의 월세를 할인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모험을 감행한다. [사진 넷플릭스]

블랙미러 '추락' 편의 주인공 레이시는 5점 만점에 4.2점의 평점을 가졌다. 하지만 4.5점이 넘어야 드림하우스의 월세를 할인받을 수 있기 때문에 모험을 감행한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블랙미러 ‘추락’(Nosedive)편은 소셜 미디어 점수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을 그린다. 이 세상 속 사람들은  상대방의 태도, 자세를 매 순간 평가해 점수를 준다. 밝게 웃으며 인사를 하거나, SNS에 멋진 사진을 올리면 4점이나 5점을 주고 반대로 불쾌한 행동을 하면 1점이나 2점을 준다.

이 점수의 평균이 한 사람의 평점이 된다. 사람들은 모두 특수 렌즈를 눈에 이식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 점수를 즉각적으로 알 수 있다. 문제는 이 점수가 그 사람이 앞으로 살아나갈 모든 상황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모두 좋은 평점을 받기 위해 다소 가식적이고 과장된 태도로 살아간다.

주인공 레이시 파운드(브라이스 달라스 하워드)는 모두에게 친절하고, 자신의 일상을 아름답게 포장해 SNS에 올리는, 이미 높은 평점(4.2)을 보유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0.3점을 더 올리기 위한 모험을 시작하기로 한다. ‘드림하우스’에서 살기 위해서는 4.5점이 넘어야 월세를 할인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점수를 빨리 올릴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4.5점이 넘는 ‘프라임 유저’에게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다. 그래서 평점 4.8의 옛친구 나오미(앨리스 이브)의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한다. 어린 시절 본인에게 상처를 줬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드림하우스를 위해 기꺼이 결혼식에 참석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폴인 스토리북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로 철학하기>에서 이원진 철학박사는 블랙미러의 곳곳에 숨어있는 철학 코드를 통해 질문을 던진다. 특히 <블랙미러-추락편>은 뻔하지 않아 재미있었다. 그는 이 드라마의 주제의식을 타인의 시선에 갇힌, 현대인의 욕망에 국한하지 않았다. 그다음, 인정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인간을 묘사한 것이 매력적이었다. 무한한 경쟁을 통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미덕인 사회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인간이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많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에서 좋은 사람은 미소를 띤, 언제나 친절한 인물로 묘사한다. 분노나 싫은 감정은 드러내서는 안 된다. 결혼식에 가야 하는데 비행기 좌석이 없다는 직원의 설명에 분노했던 레이시는 진상 고객으로 찍혀서 순식간에 2점대로 평점이 떨어졌다. 그의 불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친구 나오미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도, 2.6점은 내 결혼식에 못 와”라는 말을 듣게 된다. 상대적으로 자원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선을 긋는 것은 분명한 혐오 발언이다.

대항 발언을 낳지 않는 혐오 발언은 차별을 재생산하고 공고하게 한다. 드라마의 결말부에 가면, 레이시는 나오미의 혐오 발언에 대항하며 분노하기 시작한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식장에 도착한 레이시는 엉망진창이 되어 마이크 앞에서 분노의 축사를 한다. “사실 나오미는 늘 저를 깔봤죠. 괴롭혀줘서 고마워. 이딴 쓰레기장에 와서 영광이에요!”

폴인(fol:in) 웹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스토리북 <넷플릭스 드라마 &#39;블랙 미러&#39;로 철학하기>의 표지. [사지 폴인]

폴인(fol:in) 웹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는 스토리북 <넷플릭스 드라마 &#39;블랙 미러&#39;로 철학하기>의 표지. [사지 폴인]

레이시의 분노는 잘못된 것일까. 어떤 상황에서든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면 안 되는 세상을, 이원진 박사는 폴인 스토리북 <넷플릭스 드라마 블랙미러로 철학하기>에서 악셀 호네트의 책 『인정투쟁』을 들어 비판한다. 악셀 호네트는 인간 세계의 모든 갈등은 타인에게 ‘인정’ 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생기며,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인정 욕망을 충족해야만 자기 정체성을 확립한다고 주장했다.

호네트는 사랑-권리-연대라는 세 가지 인정을 통해 각 개인은 한 공동체의 완전한 구성원이 되고 공동체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사회 갈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개인들이 사랑, 권리, 연대라는 인정을 모두 박탈당한 채 타자에게 무시나 모욕을 당할 때 일어난다고 했다. 인정받지 못할 때 개인은 투쟁에 나선다. 자유롭게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연대에서 배제당할 때 ‘분노’는 투쟁을 추진하는 동기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드라마에서 주로 비속어(fuck)로 표현되는 분노는 더 좋은 삶,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표현해야 할 필수 감정인 것이다.

첫 직장에서 만난 사람 중 유난히 따르고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다분히 감정적이고 화가 많은 사람인데 이상하게도 끌린다. 아마도 그들이 살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처음 사무실의 문을 열고 면접을 본 날,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에 휩싸였다. 감정 없는 뒤통수들 때문이었다. 회색 파티션 사이사이 묵묵히 일을 하는 뒤통수들을 보고 난 후, 그토록 바랐던 취직이지만 막상 무서웠다. 무거운 분위기 속 흐르는 긴장감과 무력감이 두려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며, 감정 없는 뒤통수에 숨겨져 있던 표정들을 하나둘씩 볼 수 있었다. 나이·연봉·성별·학력 등 수많은 축이 단단히 교차하는 한국 회사에서 분노를 느껴본 적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신기하게도 그들과 감정을 나누기 시작하면서 출근길은 좋지도 싫지도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같이 욕하고 화내는 과정에서 묘한 에너지를 느낀다. 화를 내고 감정을 내뱉는 과정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마냥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자신의 존재를 계속 확인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생각하고 감정이 있는 그런 존재. 사람이 일하는 곳에는 그런 존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조금씩 조금씩 사람이 일할만한 곳으로 바뀔 테니까.

드라마의 막바지로 치닫자, 레이시는 “내 삶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마음 편하게 숨 한 번 내쉬면서”라고 나지막이 소원을 말한다. 역설적이게도 평점 사회에서 추락하면서 레이시는 도약할 것이다. 어쩌면 현대인들이 인정투쟁을 이겨내고 진정한 도약을 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에, 에피소드의 제목이 ‘추락’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욕망이 아니라 진짜 자신의 욕망을 알기 위해, 그리고 도약하기 위해 함께 추락해보는 것은 어떨까.

김아현 객원에디터 folin@folin.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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