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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1500만원짜리 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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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에스더 기자 중앙일보 팀장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

‘베트남,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2007년 6월 미국 국무부의 인신매매 보고서에 한국 길거리에 내걸린 현수막이 증거물로 공개됐다. 보고서는 브로커를 통한 한국의 국제 결혼을 인신매매로 규정하며 “동남아 저개발국 여성들을 상품처럼 다룬다”고 지적했다. 돈만 주면 쇼핑하듯 신부를 고를 수 있는 한국의 상황을 고발한 것이다. 국제적인 망신을 당한 뒤 정부는 부랴부랴 대책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12년이 지난 지금까지 별로 달라진게 없어보인다.

한 국제결혼업체가 제시한 ‘베트남 결혼 일정표’는 놀랍기 그지 없다. 베트남 현지에서 첫째날 단체 맞선을 한 뒤 둘째날 신부를 고르고, 셋째날 신부 부모를 만나 승락을 받은 뒤 결혼식을 올린다. 사흘간 신혼여행을 보낸 뒤 한국으로 돌아온다. 업체 홈페이지에는 19~29세 젊은 여성들의 사진이 이름·나이와 함께 걸려있다. 생면부지의 여성과 단 일주일만에 결혼 할 수 있다고 한다. 마음에 드는 여성을 선택하면 업체가 여성의 건강 상태까지 체크해준다. 결혼까지 속전속결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돈은 1500만원 안팎. 통역을 끼지 않으면 일상적인 대화조차 쉽지 않지만 부부가 된다. 업체들은 국적에 따라 여성에게 1000만~2000만원의 ‘권장가격’을 매기고, 여성 부모에게 여성이 도망갈 경우 손해배상 책임을 물린다는 각서를 쓰게 하기도 한다. 처음부터 돈으로 사고팔듯 맺어지는 부부가 대등하고 수평적인 관계가 되기란 쉽지 않다. 결혼 이주 여성들이 가정폭력에 취약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국제 사회의 오랜 비판에도 정부는 바라만 보고 있다. 일부 지자체는 ‘저출산’과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라는 명분으로 국제결혼 브로커에 지불하는 결혼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1500만원짜리 신부들의 눈물을 방치할건가.

이에스더 복지행정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