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소득층·자영업자의 약 30%가 가처분소득의 40% 이상을 원리금을 갚는데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100원을 벌어 40원을 빚 갚는데 쓰는 셈이다. 취약계층일수록 빚을 제 때 갚지 못해 '빚의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통계청에서 낸 '통계 플러스 여름호'에서 윤병우 통계개발원 경제사회통계연구실 주무관이 작성한 '우리나라 가계부채 수준과 부채 가구 특성'에 따르면 소득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 중 부채를 보유한 가구의 30.5%는 가처분소득의 40% 이상 원리금 상환에 쓰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자영업자의 25.8%는 연간 가처분소득(이자 지급 전)의 40% 넘는 금액을 원리금 상환에 사용했다.
윤병우 주무관은 "저소득층 가구에서 구조적인 취약성이 나타나며 원리금 상환으로 생계에 큰 부담을 느끼는 가구 비율이 높았다"고 분석했다. 일례로 가구주가 임시일용 근로자인 가구의 13.5%는 자산보다 부채가 많았다.
원리금 상환은 저소득층일수록 많은 부담을 가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소득 1분위 금융부채 보유 가구의 34%는 원리금 상환이 생계에 매우 부담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1년 뒤 금융부채는 감소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반면, 소득수준이 낮으면 빚을 갚기 어렵다고 예상했다. 실제로 대출기한이 지나서도 상환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한 소득 1분위금융부채 보유 가구 비중은 19.1%로 다른 소득분위 가구에 비해 높았다.
배경에는 저소득층의 '금융 소외'도 있었다. 서병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소득 1분위 차주의 대출 잔액이 전년동기대비 14% 줄은 것으로 미뤄볼 때, 취약 차주들이 제도권 금융회사로부터 외면받는 '금융 소외 문제'가 생긴 것으로 우려된다"고 짚었다.
은퇴자 빚 문제도 또 다른 복병이다. 서병호 연구원은 "은퇴자 차주 비중이 높아지고 있어 중장기적으로 건전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향후 소득감소와 의료비 급증 등으로 은퇴자들이 대출을 갚기 점점 어려워진다는 분석이다. 2015년말 16.7%를 차지하던 60세 이상 차주 비중은 지난해말 19.5%까지 늘었다.
국내 가계부채는 수년째 상승일로를 걷고 있다. 한국은행 가계신용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국내 가계부채는 1534조 6000억원으로 2002년 4분기 464조7000억원에 비해 3.3배 증가했다.
경제의 '뇌관'인 가계부채는 해외와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었다. 해외 주요국과 경제 규모·소득·인구를 고려한 가계부채 수준을 비교해본 결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4분기 기준 97.7%였으며 전년 대비 2.9%포인트 증가한 수치로 증가 속도 역시 빨랐다.
우리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97.7%)은 스위스·호주·덴마크·네덜란드·캐나다·노르웨이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전년 대비 증감 폭(2.9%포인트)도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게 나타나 빠른 증가속도를 보였다. 전기 대비 증감 폭(0.8%포인트)은 홍콩·브라질·뉴질랜드·칠레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었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7년 185.9%로 해외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 높은 수준이었다. 이 비율은 2008년 143.3%에서 2017년 185.9%로 42.6%포인트 증가했다.
윤 주무관은 "국가별 인구로 환산한 가계부채 규모는 주요 국가보다 우리나라의 증가 폭과 증가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인당 가계부채도 2008년 대비 2.36배 증가한 수치로 다른 국가보다 증가 폭이 큰 편이었다. 우리나라 1인당 가계부채는 2017년 2만9871달러로 2008년 1만2640달러에 비해 1만7231달러 증가했다.
세종=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