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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위가 상원이냐"…법안 반송 시사한 여상규 발언 후폭풍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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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상규 위원장 [연합뉴스]

여상규 위원장 [연합뉴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다른 상임위 위에 군림하는 상원인가. 국회에서 해묵은 논란이 재점화할 조짐이다. 여상규 국회 법사위원장(자유한국당)의 26일 발언 때문이다. 여 위원장은 이날 “각 상임위가 한국당과 합의 없이 처리한 법안에 대해서는 법적 근거가 허용되는 한 해당 상임위로 다시 회부하겠다. (해당 상임위로) 회부하지 못한 법안들은 법사위에서라도 여야 합의 처리를 하도록 법사위를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여야 합의를 하지 않은 법안은 법사위에서 선별해 ‘파기환송’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얘기다.

그러자 여당에서는 “법사위가 상원이냐”는 비판이 나왔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회법상 법사위 심사는 법률안이 전체 법률 체계와 상충하는 것이 없는지와 형식·자구 심사에 한정된다. 명백히 위헌, 위법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법사위원장의 월권행위라는 것이다.

실제 법사위는 국회법 절차상 모든 법안의 ‘최종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소관 상임위에서 통과된 모든 법안은 본회의 처리 전에 법사위에서 별도 심사를 받도록 돼 있다. 근거는 “각 위원회에서 심사를 마친 모든 법률안은 본회의에 상정되기 전 법사위의 체계ㆍ자구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국회법 86조다.

문제는 법에 명시된 ‘체계ㆍ자구 심사’의 범위가 애매하다는 점이다. 다른 법안과의 충돌 가능성 등 잘못된 법안 문구를 기술적으로 바로잡는 ‘윤문(潤文)’ 수준으로 봐야 한다는 게 일반적 해석이다. 법사위 관계자는 “체계·자구 심사를 말 그대로 해석하면 기술적 보완이다. 이걸 확대해석할 경우 항상 정치적 논란이 일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국회법상 법사위원장이 법안을 상임위로 다시 회부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은 없다”고 말했다.

여 위원장 발언은 체계·자구 심사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야 합의’ 여부를 따져 상임위에 돌려보내겠다는 것이어서 사실상의 ‘상원’ 역할을 하겠다는 주장인 셈이다. 법조인 출신인 한국당의 한 의원은 “(여 위원장이) 사실상 법안의 파기환송을 얘기한 건데 법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26일 오후 법사위 소회의실의 법안 관련자료. [연합뉴스]

26일 오후 법사위 소회의실의 법안 관련자료. [연합뉴스]

법사위는 과거에도 나머지 16개 상임위보다 우월적 지위를 남용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2013년 말 야당 소속이던 박영선 법사위원장이 여야가 합의한 외국인투자촉진법(외촉법) 상정을 거부한 끝에 해를 넘겨 겨우 처리한 전례가 있다. 2010년 10월는 김무성 당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법사위에 66건의 법안이 계류돼 있는데 정책 질의를 너무 과하게 하고 상임위 결정사항을 존중하지 않는다. 법사위가 상원화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법사위 권한을 축소하는 법안도 여러 건 계류 중이다. 지난해 11월 홍익표 민주당 의원은 “법사위가 상원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며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법안은 자구 심사 등 법제 기능을 법사위에서 분리해 ‘국회법제지원처’(신설)에 넘기고, 법사위 명칭을 사법위원회로 변경하는 것이 골자다. 지난해 5월 우원식 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취지로 법사위의 체계ㆍ자구 심사 기능을 없애고 각 상임위가 자체 심사하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 대표 발의했다.

한영익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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