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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정 사건 막을 수 있었던 법원 면접센터 ‘호출벨’…예산 없어 전국에 3곳만 운영

중앙일보

입력

서울 서초동 가정법원 내에 있는 면접교섭센터 이음누리 정문. 김민상 기자

서울 서초동 가정법원 내에 있는 면접교섭센터 이음누리 정문. 김민상 기자

21일 오전 11시 서울 서초동 서울가정법원 정문. 정문 옆에는 ‘양육자는 벨을 눌러주시고, 비양육자는 정문을 통해 출입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 문구와 함께 호출벨이 눈에 띄었다. 호출벨은 이혼 부부의 자녀 만남을 위해 서울가정법원이 2014년에 만든 면접교섭센터 ‘이음누리’ 정문에 붙어 있다.

 면접교섭센터는 안내문구처럼 양육자와 비양육자로 나뉜 이혼 부부 동선을 최대한 고려했다. 양육자가 호출벨을 눌러 가정법원 외부 문으로 들어오면 비양육자는 내부 건물 2층 계단으로 들어와 서로 마주치지 않는 방식이다. 면접교섭센터는 장난감이 있는 놀이방 3개가 달린 약 110㎡(33평) 크기 공간이다. 내부에서 비양육자는 아이와 2주에 한 번, 1시간씩 만날 수 있다. 비양육자가 아이를 만나고 있으면 전문 상담원이 양육자에게 붙어 멘토가 돼 준다. 비양육자가 아이를 강제로 데려가는 상황을 막기 위해 곳곳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됐고 보안요원도 대기하고 있다.

 전 남편을 끔찍한 방식으로 살해한 의혹을 받고 있는 고유정이 있는 제주법원에는 이음누리와 같은 면접교섭센터가 설치돼 있지 않다. 면접교섭센터는 현재 서울‧인천‧광주 법원 3곳에만 있다.법원은 전국적인 확대를 원하지만 예산부족이 큰 걸림돌이다.

서울 서초동 가정법원 내에 위치한 면접교섭센터 이음누리. 김민상 기자

서울 서초동 가정법원 내에 위치한 면접교섭센터 이음누리. 김민상 기자

 서울가정법원의 경우 설치 예산이 1억9500만원 들었고, 연간 운영비가 4400만원 소요된다. 운영비는 상담위원 32명에게 지급되는 시간당 5만원인 수당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공간 확보와 건축 비용, 전담 인력 운영 자금이 필요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전국으로 확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가정법원 이음누리도 매일 10여 가정이 면접교섭을 신청하지만 하루에 다섯 가정 밖에 볼 수 없어 대기자가 늘어나고 있다.

 고유정 사건은 이혼 가정에서 면접 교섭 문제를 부각시키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그동안은 이혼 가정에서 양육비 지급 문제만 강조돼 비양육자의 강제 지급 방안을 찾는데 초점이 맞춰져 왔다. 고유정 전 남편 강모씨가 2017년 4월부터 올해 4월까지 25개월간 고유정에게 양육비 40만원을 보낸 것도 면접교섭권과 관계 있다는 게 이혼 전문 변호사들의 시각이다.

 박은주 변호사는 “고유정 사건에서 남편이 본인의 양육비 지급 의무를 다하였으나 아이를 면접 교섭하지 못해서 강제 이행 신청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씨는 고유정이 아들을 보여주지 않자 법원에 강제 이행을 신청해 2년 만에 볼 수 있는 면접 교섭권을 얻어 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가정법원 이음누리와 같은 면접교섭센터가 없으니 제주법원에서 장소를 지정해주지 않았고, 무인 펜션에서 다시 만난 이혼 가정에서 결국 사고가 일어났다.

 비양육자의 면접 교섭 이행권을 일부 강화시킨 양육비 이행법 개정안은 25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양육비 이행법 개정안을 발의한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면접교섭 센터를 급하게 늘리면 이혼을 장려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 여론도 있었다”며 “국내 이혼이 연간 10만명 수준으로 꾸준히 유지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혼 가정 자녀의 안정적인 양육을 위해서라도 면접 교섭 센터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혼건수 추이. 2018년은 2014년 이후 처음으로 전년 대비 이혼 건수가 증가했다. [사진 통계청]

이혼건수 추이. 2018년은 2014년 이후 처음으로 전년 대비 이혼 건수가 증가했다. [사진 통계청]

 통계청이 지난 3월 발표한 2018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은 10만8700건으로 전년보다 2.5%(2700건) 증가했다. 이혼 건수가 증가한 것은 4년 만으로 2015년 이후 매해 10만건 수준으로 유지돼 왔다. 김민주 변호사(로펌 이든)는 “아직도 폭력적인 배우자가 많아서 법원 등 중재 역할을 하는 기관에서 같이 지켜봐야 마음이 놓이는 양육자가 있다”며 “예산을 늘려 면접센터를 전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면접 교섭 센터 확대가 이혼 가정 문제에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이인철 변호사(법무법인 윈)는 “고유정 사건에서도 법원이 이혼 소송 당시부터 세심하게 가정 환경을 지켜봤다면 남편에게 양육권을 줬을 수도 있었다”며 “누가 양육권을 가져가는 게 옳은 지 판결 때부터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법원 보조 인력을 충원하고 세밀한 가정 조사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상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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