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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국산 맥주의 반격 어디까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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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호 14면

국내 맥주시장에서 분위기 반전이 일어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수입 맥주의 공세에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던 국산 맥주가 인기를 끌고 있어서다. 올 들어 수입 맥주 성장세는 주춤하고 있다. 특히 맥주 주세가 종량세(양·도수에 비례한 과세)로 바뀔 예정이라는 점도 불리한 요소다.

출렁이는 맥주 시장 #테라 출시 한 달 만에 105만 상자 #호주산 맥아 100% 써 맛 차별화 #감귤 껍질 사용한 ‘제주 위트 에일’ #‘서울 라거’ 등 중소 양조장 선전도 #종량세 방식 과세 땐 가격 경쟁력

21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맥주 수입액은 7279만 달러(약 856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가량 줄었다. 2분기에도 6월 현재까지 수입이 둔화한 것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맥주 수입액은 3억968만 달러로 2017년 대비 17% 늘었다. 2017년에는 2016년 대비 44% 증가했다. 맥주 수입량이 늘어나는 사이 국산 맥주는 내수시장에서 그만큼 고전했다.

국산 맥주의 반격을 이끄는 선봉장은 하이트진로가 지난 3월 21일 선보인 신제품 ‘테라’다. 주류 업계에 따르면 테라는 나온 지 한 달여 만인 4월 말까지 누적 105만 상자(3193만 병, 병당 330㎖ 기준)가 팔렸다. 국산 맥주 브랜드 중 최단 시간 100만 상자 판매 돌파 기록을 세웠다. 5월에는 누적 판매량이 200만 상자를 넘어섰다. 전례가 드문 성적이다. 이 회사의 스테디셀러 ‘하이트’나 ‘맥스’도 과거 출시 직후 첫달 판매량은 30만 상자 수준에 그쳤다. 테라 흥행에 하이트진로 주가는 연일 올라 4월 18일 1만7350원에서 현재 2만1000원대로 52주 신고가를 갈아치웠다.

테라의 인기 비결은 ‘원재료 차별화’ ‘선택과 집중’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영목 하이트진로 상무는 “호주에서도 보리 생육에 최적화한 일조량과 강수량, 비옥한 토지, 풍부한 수자원을 갖춘 곳으로 유명한 청정지역인 ‘골든트라이앵글’에서 생산된 맥아를 100% 사용해 (테라를) 양조하고 있다”며 “원재료부터 차별화해 지금까지의 국산 맥주와는 다른 맛과 향을 내려 했다”고 말했다. 그런 재료로 제조 노하우가 풍부하고, 한국인의 식습관에 맞는 라거(lager)를 만드는 강점 극대화 전략이 먹혔다는 분석이다.

맥주 종류는 크게 라거와 에일(ale)로 나눌 수 있다. 맥주 전문가인 황지혜 비플랫 대표는 “라거는 10℃ 안팎, 에일은 20℃ 안팎의 온도에서 각각 발효하는 효모를 달리 써서 양조한다”며 “다양한 향이 나고 알코올 도수도 높은 편인 에일과 달리, 라거는 향이 적되 부드러운 목 넘김과 청량감이 특징인 맥주”라고 설명했다. 통상 소비자가 선호하는 음식의 맛과 향이 강한 편인 국내에선 에일보다 라거가 곁들이기 더 좋은 맥주라는 분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때문에 지금껏 국산 맥주는 에일보다 라거 제품이 많았다. 하이트·맥스뿐만 아니라 ‘카스(오비맥주)’ ‘클라우드(롯데주류)’ 등도 모두 라거다. 테라는 이처럼 국내에서 시장성이 검증된 라거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100% 리얼 탄산 공법’으로 청량감을 강화했다. 발효 과정에서 자연 발생하는 탄산만 별도 저장하는 기술과 장비를 새로 도입해 만들어 탄산 성분이 오래 유지될 수 있도록 했다.

국산 맥주의 반전이 테라 덕분만은 아니다. 국내 대기업 계열 맥주나 수입 맥주 사이의 틈새시장을 노리는 중소 규모 양조장의 선전도 눈에 띈다. 이들은 특색 있는 라거나 인디아페일에일(IPA) 등의 에일을 직접 만들어 수제 맥주 마니아를 끌어 모으고 있다. 유기농 감귤 껍질을 사용해 만든 ‘제주 위트 에일’로 유명한 제주맥주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의 경우 2017년 8월 공식 출범 후 1년 만에 월매출이 1400%나 증가했다. 올 1분기 매출도 전년 동기 대비 배로 늘었다. 굿맨브루어리의 ‘서울 라거’ ‘굿맨 IPA’, 버드나무브루어리의 ‘하슬라 IPA’, 플레이그라운드브루어리의 ‘더 젠틀맨 라거’ 등도 입소문이 났다. 이들은 주요 소비층인 젊은 세대를 겨냥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마케팅에 힘쓰면서 탄력을 받았다. 2014년 50여 곳이던 국산 수제 맥주 양조장은 지난해 100여 곳으로 늘면서 국산 맥주 반격에 힘을 보태고 있다.

주류 업계는 이런 분위기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에 주목한다. 국산 맥주가 수입 맥주 대비 뒤처진 것으로 여겨졌던 맛의 다양성과 가격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에서다. 특히 정부가 최근 맥주 과세 체계를 종량세 방식으로 전환하기로 한 것도 국산 맥주에 호재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초 당정 협의회에서 “내년도 정부 세법개정안에 맥주와 탁주에 대한 종량세 전환 내용을 담아 국회에 제출하고, 내년부터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존 종가세 체계에서 국산 맥주의 경우 생산비에 유통비·판매관리비·마케팅비 등까지 포함해 세금을 내야 했다. 이와 달리 수입 맥주는 수입 신고가에만 세금을 매겨 국산 맥주 역차별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현행법상 L당 국산 맥주의 과세표준은 1189.24원, 제세금 총합은 1343.00원으로 같은 양의 수입 맥주 과세표준(1061.84원)이나 제세금 합계(1199.44원)보다 높다. 종량세로의 전환 후 중소 규모 맥주 업체들의 납부세액은 현행 L당 513.70원에서 442.39원으로 13.9% 감소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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