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국부 유출"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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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중국은 지난달 자국 기간산업체의 해외 매각을 막겠다는 방침을 천명했다. 기간산업체 인수합병(M&A)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국가가 직접 통제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기업의 해외 매각을 외국 자본의 유입으로 보는 게 아니고 국부의 해외 유출이라고 판단한 셈이다. 경영난을 겪다 최근 매물로 나온 홍콩 최대 통신업체 PCCW가 이 방침의 첫 적용 대상이 되고 있다.

◆ 3파전이 된 PCCW 인수전=PCCW는 홍콩 최대 재벌인 리자청(李嘉誠) 장성(長城)그룹 회장의 차남인 리처드 리(李澤楷.사진)가 소유한 업체다. 금융과 부동산, 그리고 유무선 통신과 미디어 부문으로 나뉘어 있는 대기업이다. 지난 5년간 경영난을 겪어온 PCCW는 이동통신서비스 업체인 선데이커뮤니케이션스 등 통신과 미디어 부문을 지난달 매물로 내놨다.

그러자 세 곳에서 인수 의사를 밝혔다. 먼저 호주 언론재벌인 루퍼트 머독이 자국 매쿼리 은행을 통해 미화 73억 달러의 인수가격을 제시했다. 이어 미국의 뉴브리지 캐피털이 75억 달러를 제시했다. 그러자 중국 국영 통신업체인 차이나넷컴이 국가 기간산업체를 외국 기업에 팔 수 없다며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PCCW의 2대 주주로 지분의 20%를 소유하고 있는 업체다. 차이나넷컴의 제시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홍콩 금융가에선 두 해외업체가 제시한 것보다 낮을 것으로 본다.

◆ 해외 매각 힘들 듯=중국 정부는 최근 차이나넷컴을 통해 'PCCW의 해외매각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입장을 경영진에 전달했다. 그러자 매쿼리 은행과 뉴브리지 캐피털은 'PCCW를 인수하더라도 차이나넷컴의 경영참여를 보장하는 것은 물론 나중에 주식을 매각하더라도 홍콩에서만 거래하고 홍콩 기업이 경영권을 행사하게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를 비롯한 홍콩 언론들은 중국 정부의 '해외매각 불가' 입장이 워낙 확고해 PCCW가 외국 기업에 매각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한다.

◆ 정책으로 기간산업 해외 매각 통제=홍콩 언론에 따르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상무부.재정부 등 6개 경제부처는 지난달 중순 회의를 열어 해외 기업의 중국 기업 인수조건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결정했다. 국무원을 통해 모든 경제 부처에 하달된 이 방안은 원전 등 7개 기간산업 업종을 해외자본이 인수합병할 수 없도록 명시했다. 통신업체는 구체적인 매각통제 업종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통신은 기간산업에 들어가기 때문에 이 원칙에 준해 국가가 해외 매각을 통제하는 것이라고 PCCW 경영진은 보고 있다.

한편 이 방안에는 각 지방정부가 해외 기업의 중국 기업 인수와 관련한 모든 정보를 국무원에 의무적으로 보고토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와 함께 시 단위급 이상 지방정부는 지역 내 M&A 관련 전문가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외국 기업의 중국 기업 투자나 인수 시 문제가 없는지를 세밀하게 심의토록 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중국의 알짜기업 인수가 힘들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홍콩=최형규 특파원

◆ PCCW=인터넷 업체로 시작했다가 2000년 홍콩 텔레콤을 인수하며 급성장한 홍콩의 통신업체다. 최근 5년간 통신업계 경쟁이 심해지면서 적자가 누적돼 지난해 말 현재 미화 25억 달러의 부채를 안고 있다. 2005년 1월 유동성 위기를 거치면서 지분 20%를 미화 10억 달러에 차이나넷컴에 매각했다. 주가는 최근 한 달 새 14%가 오른 5.55홍콩달러 내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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