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공개 항명…국정원 댓글수사팀 줄줄이 좌천
"이렇게 된 마당에 사실대로 다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2013년 10월 21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서울고등검찰청 국정감사장.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 특별수사팀장이었다가 업무에서 배제된 윤석열 여주지청장의 말 한마디에 묘한 침묵이 흘렀다.
이어 윤 지청장은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이)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 야당이 이것을 가지고 정치적으로 얼마나 이용을 하겠느냐'라고 했다"며 "이런 말씀을 하시기에 저는 검사장님 모시고 이 사건을 계속 끌고 나가기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공개석상에서 직속 상관을 들이받은 공개 항명 파동의 시작이었다.
윤석열(59·사법연수원 23기) 검찰총장 후보자의 검사 인생은 이날 이후로 송두리째 바뀌었다.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은 뒤 한직으로 여겨지는 대구고검, 대전고검 등을 3년 넘게 떠돌았다. 박형철(51·25기) 부팀장이 감봉 1개월 징계를 받고 역시 고검을 전전하다가 사표를 내는 등 함께 수사팀에서 일했던 검사 대부분이 좌천성 인사를 당하며 전국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한직 떠돌던 수사팀, 실세로 부상
2016년 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며 반전이 일었다. 평소 윤 후보자를 아끼던 박영수 전 고검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를 맡게 된 직후 수사 책임자로 윤 후보자를 내세웠다. 박근혜 정부 초기 좌천됐던 윤 후보자가 박근혜 정부를 수사하며 다시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윤 후보자는 '한풀이 수사' 우려에 대해 당시 "검사가 수사권을 가지고 보복을 하면 그게 깡패지 검사입니까"라는 말을 남겼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윤 후보자에 대한 인사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윤 후보자는 고검 검사에서 검사장으로 승진하자마자 서울중앙지검장에 부임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고검장이 가던 중앙지검장을 검사장급으로 낮추면서까지 이같은 인사를 단행했다.
윤 후보자는 자신과 함께 부침을 겪었던 옛 수사팀원들을 서울중앙지검으로 대거 불러올렸다. 대전지검에 있던 진재선(45·30기), 대전지검 홍성지청에서 근무하던 김성훈 (44·30기) 부장검사는 2017년 8월 검찰 인사에서 공안부 요직인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장과 공공형사수사부장으로 각각 자리를 옮겼다. 진 부장검사는 이듬해 법무부 형사기획과장(옛 검찰2과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공석이 된 공안2부장 자리는 김 부장검사가 채웠다.
같은 팀 소속으로 공소유지를 담당했다가 빠진 이복현(48·32기)·단성한(45·32기) 검사도 같은 해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 부부장으로 합류했다. 이 검사는 원주지청 형사2부장으로 소속이며 이명박 전 대통령 뇌물 사건 공소 유지를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파견 중이다. 중앙지검 특수1부 부부장인 단 검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에 투입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직접 조사하기도 했다.
부팀장이었던 박형철 변호사는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받은 뒤 대전고검에 머물다가 2016년 검찰을 떠났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으로 발탁돼 활동 중이다. 청와대와 검찰간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부패비서관실 산하 특별감찰반원이던 김태우 전 수사관의 폭로로 공무상 비밀누설 및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옛 수사팀 중용 가능성…"부채의식 남아 있을 것"
검찰 내부에선 윤 후보자가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옛 수사팀원들을 다시 중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윤 후보자와 친분이 있는 한 검찰 간부는 "윤 후보자가 자신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는 점 때문에 이들에 대한 부채의식이 남아 있을 것"이라며 "한직을 떠돌던 국정원 댓글 수사팀이 지금은 검찰 내 실세 라인으로 부상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서로 밀고 당겨주는 건 옛 대검 중수부 출신들의 전통"이라며 "윤 후보자는 같이 근무한 인연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했다.
다만 법조계에선 검찰총장 후보로 지명된 만큼 윤 후보자가 포용 인사를 펼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총장에겐 조직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자질이 요구된다"며 "인연을 떠나 능력이 검증된 인재를 적재적소에 기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기정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