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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용하의 이코노믹스

국민은 사회정의 흑기사 대신 투자의 귀재를 원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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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국민 노후자금 불안하게 한 국민연금이 할 일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세계 3대 연기금으로 꼽히는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637조원의 기금을 쌓았다. 국내총생산(GDP)의 35.7% 규모에 달한다. 덩치가 큰 만큼 기금운용 수익률이 1%포인트 높아지면 적립기금 고갈 연도가 5년 연장된다는 추계가 나온다. 기금운용의 중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의미다. 따라서 지난해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수익률이 -0.92%라는 결산보고는 모든 국민에게 충격적이었다. 100세 시대가 열리면서 ‘용돈연금’이다 ‘쥐꼬리’에 불과하다 해도 국민연금은 많은 국민에게 노후의 최후 보루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연금의 마이너스 수익률은 국민적 근심거리가 됐다.

작년 충격적 -0.92% 수익률 기록 #기금운용시스템 전면 개편 시급 #스튜어드십 코드는 엉뚱한 역할 #돈 까먹지 않는 본연 역할 지켜야

수익률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이익이 낮다는 차원을 넘어 원금 손실이 발생했다는 의미다. 물론 평가손이기 때문에 주식 가격이 반등하면 회복될 수 있지만, 반면에 더 큰 원금 손실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기금운용 전반에 대한 점검이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에는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 나서면서 협의의 자산운용을 넘어 경제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마이너스 수익률, 전략·전술 모두 잘못

먼저, 수익률 -0.92%의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해 보자. 지난해는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같이 경제적 충격이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미·중 무역 분쟁 등의 여파로 주요 증시가 일시적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따라서 수익률 하락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던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비교 가능한 벤치마크 수익률보다 저조했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민연금은 국내채권 48%, 국내주식 17%, 해외채권 4%, 해외주식 19%, 대체투자 11%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손실은 국내주식이 가장 컸다. -16.9%를 기록했는데 벤치마크 대비로도 -1.27% 포인트 낮았다. 해외주식은 -5.60%이고 벤치마크 대비 -0.24% 포인트 낮았다. 해외채권은 4.25%의 수익을 냈지만, 벤치마크 대비 -0.15%를 기록해 시장 대비 모두 저조한 성과를 나타냈다. 자산 비중이 가장 높은 국내채권만 4.82%를 기록하면서 벤치마크 대비 0.08% 포인트 상회했다. 638조원이나 되는 거대 기금을 가지고 국내채권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장 평균 수익률보다 낮은 성과를 보인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자산운용의 기본원칙에는 수익성·안정성·유동성이 있지만, 적립기금이 2040년경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국민연금은 안정성 기반 위에 수익률을 최대로 높이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연금 성과가 저조한 원인은 자산 배분의 관점에서 볼 때 전략적으로나 전술적으로나 모두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플러스 수익률을 보인 채권 투자 비중은 낮추고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인 주식 투자 비중을 높인 것은 전략의 문제이고, 벤치마크 대비 수익률이 낮은 것은 전술의 문제라고 볼 때 마이너스 수익률은 전략·전술 모두 잘못됐다는 평가를 가능하게 한다.

전략적 자산배분 결정은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전술적 운용은 기금운용본부에 책임이 있다고 볼 때 자산운용의 핵심축인 운용위원회와 기금운용본부가 책임을 공유해야 한다. 그동안 운용위원회는 위원의 구성에 있어 전문성보다는 가입자 대표성에 무게를 과중하게 두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20년 전 만들어진 운용 체계

기금운용본부는 2018년 대부분의 기간을 포함한 13개월 동안 최고 의사결정자인 본부장을 공석으로 방치했다는 점에서 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은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기금운용을 담당하는 실장급과 부장급을 포함해 투자전문가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다. 그 원인이 처우 문제도 있지만, 공공기관 지방분산 차원에서 전주로 기금운용본부를 이전한 것에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의 근원을 개선하지 않고는 향후에도 수익률 목표를 상회하는 성과를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현재 운용 체계는 적립기금이 47조원에 불과했던 1999년 만들어졌다. 그러나 향후 기금은 1778조원(2041년)으로 불어난다. 이에 맞춰 운용 시스템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개편하는 것이 시급하다. 모범적인 운영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캐나다 연금투자위원회(CPPIB)처럼 독립적으로 조직하되, 운용위원회와 기금운용본부가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기초해 작동되도록 해야 한다. 운용위원회는 전문성을, 기금운용본부는 글로벌 대응능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문인력을 대폭 확충할 수 있도록 환경과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도 연못 속의 고래로 비유되는 거대 기금을 단일 기금으로 운용할 때 따르는 부담을 경감하고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운용 목표와 기능이 각기 다른 여러 개의 독립적인 펀드로 나누고, 기금운용위원회는 하위 펀드들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지주회사 성격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되는 국민연금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에 기초한 주주권 행사도 기금운용 수익률 최대화 관점에서 재정비가 필요하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막고자 영국 등 일부 국가의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규정에 불과하다. 그런 성격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정부 주도로 국민연금 기금이 규정을 만들고 사회정의 차원에서 흑기사로 나서게 하는 것은 정치적 중립과 독립성을 훼손해 기금의 정상적 운영에 혼선을 줄 수 있다. 노후 소득보장의 보루인 국민연금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점에서 신중함이 요구된다. 국민은 국민연금이 본연의 역할에서 벗어나 엉뚱하게도 사회정의의 흑기사 역할을 자처할 게 아니라 국민 노후를 풍족하게 해주는 투자의 귀재가 되기를 바란다.

독립성 훼손 우려되는 스튜어드십 코드

투자분석 사이트인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2019년 3월 말 기준), 국민연금은 국내 294개 기업에 5% 이상의 주식 지분을 가지고 있고, 10% 이상 보유하고 있는 기업도 90곳에 달한다. KT·포스코·KT&G·네이버·하나금융·KB금융·신한금융·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표기업들이 모두 포함돼 있다. 이같이 국민연금의 절대적 위상을 고려할 때, 재무적 투자자를 넘어 경영 참여형의 주주권 행사는 우리나라 시장경제 체제의 근간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주권 행사의 요건과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현행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지배구조가 기금운용위원회의 위원장과 당연직 위원이 대통령이 임명하는 보건복지부 장관과 관련 부처 차관으로 구성된다는 점에서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기 어렵고, 정부 주도의 연금사회주의 및 연금관치주의 논란이 불식되기 어렵다.

외국은 어떤가. 지난해 3월 말 기준 3561억 캐나다 달러 기금으로 11.6%의 높은 운용수익률을 기록한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는 운용 지침에 근거해 운용 성과에 대해 엄격한 책임을 진다. 주·연방정부의 재무부 장관은 연금의 대표자이지만, 실질적인 운용 의사결정권은 별도의 CPPIB 이사회가 가진다. 연금의 장기 안정성에 기여하고 성과 제고라는 목표에 따라 지난해 3월 기준으로 주식(공모, 사모) 59.1%, 채권 17.4%, 부동산 23.5% 등에 분산 투자하고 있다. 국내투자 비중은 15.1%이고 84.9%를 해외투자하고 있는데, 협소한 국내경제 및 자본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감소시키려고 위험을 분산하고 새로운 투자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현황

스튜어드십 코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가 기관투자가의 도덕적 해이에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기관투자가가 수익자(연금 가입자)의 스튜어드(집사)로서 주주 이익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자율적 준칙이다.

현재 영국·네덜란드·스위스·이탈리아·덴마크·미국·캐나다·호주·일본·말레이시아·홍콩·대만·싱가포르·카자흐스탄·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도입하고 있으나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의 자율적 준칙에 가깝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전에도 기관투자가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는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 존재했다. 주주권 행사가 투자수익률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지 아닌지에 대한 연구 결과는 일관적이지 않고 긍정과 부정을 두고 여전히 논란되고 있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