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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아탈리 칼럼

좌익·우익은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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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자크 아탈리 아탈리에아소시에 대표 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자크 아탈리 아탈리에아소시에 대표 플래닛 파이낸스 회장

약 200년 전부터 대부분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치적 경쟁은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다. 정쟁은 기존 상황을 유지하려는 이들과 이를 문제 삼으려 하는 이들 사이에서 벌어진다. 기득권층과 이전 세대가 쌓아 올린 입지를 뒤엎으려는 이들의 대립이다. 여기에는 온갖 함축적인 요소가 내포돼 있다. 각국의 역사·사고방식·지정학적 상황 등이 얽혀있다.

세상 복잡해져 좌·우 분할 난망 #이기주의·이타주의 구별이 대안

대립은 오늘날 훨씬 더 복잡해졌다. 자연보호론자들은 보수로 분류해야 할까? 모든 기술 혁신을 격려하고 승인하는 이들은 변화 지지론자로 봐야 할까? 기존의 분류 방식에 따르면 환경보호 지지 정당은 우파가 되고 자유경제 지지 정당은 좌파가 될 터이다.

농촌 보호론자들은 우파로 봐야 할까? 국가 정체성 수호자들은 우파, 세계를 향해 나아가려 하는 이들은 좌파로 분류해야 할까? 프랑스 정체성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정교 분리 원칙은 좌파의 업적 아닌가? 시장 개방은 시장경제 지지자들의 개념이니 우파로 놓아야 하지 않을까? 강압적인 정부는 좌파보다는 우파에 더 가깝다고 봐야 할까?

기존 개념과 일치하지 않는 새로운 싸움들이 등장했다. 정치 토론을 단순히 양 진영 간 대립으로 축소하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진다. 보수파와 진보파는 이제 좌·우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좌·우 구분은 시대에 뒤떨어진 일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고 구분마저 접어야 할까? 오늘날의 싸움은 진보와 보수 사이, 영토를 중시하는 이들과 교류를 중시하는 이들 간의 투쟁이라고 정리해야 할까?

물론 ‘개방’과 ‘폐쇄’의 구분은 더 중요해졌다. 폐쇄 편에 있는 이들은 모두가 하나의 정체성, 하나의 영토, 하나의 문화·자연 유산을 수호한다. 이 기준대로라면 극우와 환경보호론자들 사이에 동맹이 형성되어야 할 텐데, 그런 일은 보기가 힘들다. 그러니 이는 적절한 구분이 아니다. 문을 닫아걸면서 환경을 지킨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기후 문제에는 국경이 없다. 한 나라의 삼림 상황을 개선한다고 해서 전 세계 삼림 상황 악화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개방 편에 있는 이들은 그것이 자신에게 이롭기에, 교역 권리를 대가로 외국인과 외국산 제품을 받아들이려 한다. 이런 정신에 따르면 난민 수용론자들과 자유 무역 지지자들 간의 동맹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런 일도 거의 없다. 이런 까닭에 나는 보수와 진보, 폐쇄와 개방의 구분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좌파와 우파라는 구분이 구시대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양상이 바뀌는 것이다.

소득·자산·희망 불평등이 지금처럼 심각한 적은 없었다.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이 지금보다 더 정당한 적도 없었다. 개인·세대·사회·지역·집단 간 정의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개념을 한곳에 모으고, 새로 등장한 분열 노선이 어디를 지나는지 알기 위해서는 새로운 구별 방식 수립이 필요하다. 자신을 돌보는 게 최우선이라 생각하는 이들과 타인을 돕는 게 자신을 돕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을 가르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는 어떨까? 각각은 완벽하게 존중할 만한 관점이다.

좌·우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으며, 모든 이에게 객관적으로 유익한 개혁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그때는 한동안 좌·우 구분이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지속하기는 어렵다.

이타주의야말로 이기주의의 가장 지적이고 가장 효과적인 형태라는 것이 통하기만 한다면 결국 승리는 이타주의의 몫이 될 것이다. 예컨대, 농촌 지역 지원은 도시의 삶을 지키는 최선의 길이고, 아프리카 개발을 돕는 것이야말로 유럽의 이해를 해치지 않는 최상의 방법이다. 우리 자신의 미래 준비도 다음 세대를 보호할 때 최선으로 향할 수 있다.

자크 아탈리 아탈리에아소시에 대표·플래닛 파이낸스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