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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핀란드서 보셨나요? 스타트업 성공 비결 셋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노르웨이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오슬로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대화가 교착 상태지만 그것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지난 70년 적대해 왔던 마음을 녹여 내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노르웨이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오슬로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대화가 교착 상태지만 그것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며 ’지난 70년 적대해 왔던 마음을 녹여 내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2017년 6월. 핀란드 알토대에서 탄생한 스타트업 ‘캐치박스’의 창업자 피리 타닐라를 만났다. 사업에 실패하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었다. “다른 사업을 또 하면 되죠”란 답이 돌아왔다. 그는 “핀란드에선 자녀 교육이나 노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어떤 사업이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핀란드엔 있고 한국엔 없는 것 #① 내수 싸움 아닌 세계시장 겨냥 #② 깐깐하게 선별 뒤 정부 불간섭 #③ 망해도 재기 가능한 사회 안전망

#스타트업과 투자자를 이어주는 사업을 하는 스타트업 ‘마리아01’을 찾았다. 낡은 병원을 개조해 세운 사무실 앞마당에선 맥주 파티가 한창이었다. 왁자지껄하게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은 스타트업 창업자와 투자자들이었다. 한국에선 ‘발표시간 5분’을 지켜야 하는 데모데이(창업자들이 투자자를 구하는 행사)가 이곳에선 ‘먹고 마시는’ 행사였다.

#핀란드 국립기술혁신지원청(Tekes)은 ‘스타트업 도우미’ 부처다. 여기에서 일하는 유카 하이리넨 이사는 대표 스타트업 몇 군데를 소개했다. 도심 내 쓰레기통에 버려진 쓰레기양 측정 정보를 청소부에게 전송해 주는 기업, 오락실 게임을 하듯 기타를 배울 수 있도록 곡 진행에 따라 흘러가는 스마트 악보를 개발한 기업 등이다. 유카 이사의 표정에는 아들·딸 자랑하듯 흡족함이 가득했다.

2년 전 핀란드 스타트업 현장에서 본 풍경이다. 판교에선 보기 힘들 만큼 ‘특별한’ 기업이 있지는 않았다. 차이점은 이들이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들어 가는 구조였다. 한국에선 사업 시작 단계부터 실패 이후를 걱정하는 창업자와 그런 창업자들을 오디션 무대에 세우고 품평회를 하는 것 같은 투자자들을 자주 본다. 정책자금 지원 이후 창업자에게 온갖 ‘갑질’을 하는 관료들도 있다. 하지만 핀란드의 공기는 창업자들을 자유롭게 하는 듯했다.

전체 인구(556만 명)가 대구·경북 수준인 핀란드에서 스타트업이 성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핀란드 창업자들은 “인구가 적으니 창업 단계부터 세계 시장을 겨냥한다”고 말했다. 핀란드에는 또 두터운 사회 안전망이 있다. 삼성SDS에서 인공지능 개발을 했던 이치훈 전 상무는 “핀란드 출신 개발자들은 자녀 교육 걱정이 없다는 이유로 애플에서 일하다가도 종종 스타트업을 창업하러 고국으로 복귀한다”고 전했다.

정부의 스타트업 지원도 체계적이다. 대상자 선별은 시장 전문가에게 맡겨 까다롭게 검증하고 재정 지원 이후에는 정부가 경영에 일절 간섭하지 않는다. 핀란드에선 당연한 이런 시스템이 한국엔 없다. 국내에선 배달·택시 등 ‘내수용’ 스타트업이 많다 보니 이해 당사자들과 아웅다웅한다. 창업했다 실패하면 가족까지 풍비박산 나기도 한다. 정부도 ‘3+1 플랫폼 경제’ ‘4대 신산업’ 같은 작명 아래 혁신 분야를 공무원 마인드로 정한다. 재정 지원은 허술하지만 한번 받았다가는 고작 3명이 창업한 기업에 ‘일자리 창출 성과’까지 요구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최근 핀란드 스타트업 현장을 방문했다.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문 대통령은 알토대 관계자에게 “혁신은 어떻게 기득권을 이겨냈는가”란 질문을 던졌다. 물론 스타트업에 시장 내 기득권은 장애 요소다. 그러나 정부가 할 일은 따로 있다. 이해 당사자 간 갈등 조정, 사회 안전망 마련, 스타트업 해외 진출을 돕기 위한 ‘세일즈 외교’ 등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응당 할 일은 하지 않고, ‘스타트업 활력 제고 종합대책’ 같은 일을 벌여 정부가 ‘선수’로 뛰는 일을 반복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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