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國監 증인 불출석도 짜고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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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선정된 노무현 대통령의 친인척과 측근들이 사전에 조직적 논의를 거쳐 출석을 거부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회 정무위원장에게 팩시밀리로 보낸 네명의 불출석 사유서는 제출자 이름만 다를 뿐 글자 하나 다르지 않았고, 발신지와 발신시간대마저 같았다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한나라당이 그 배후로 청와대를 지목한 것도 결코 무리가 아니다.

만약 청와대가 불출석을 종용했거나 일괄 작성해줬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국회의 국감 활동을 청와대가 뒤에서 방해한 셈이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盧대통령의 형 건평씨와 건평씨의 처남, 전 장수천 사장과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은 대통령 주변 의혹의 진위를 밝힐 수 있는 핵심 증인들이다.

야당과 언론의 의혹 제기에 대해 항상 불만을 터뜨려온 당사자들이 공개리에 해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마다하고, 이 핑계 저 핑계로 국회에 출석하지 않는 것을 국민이 어떻게 생각할까. 또 증인 출석 요구서가 출석 7일 전에는 도착해야 하는데, 그 하루 뒤인 6일 전에 받았기 때문에 참석하지 못하겠다는 것은 불출석 사유치고는 몹시 군색하다.

그나마 증인으로 출석했던 강금원씨의 감정적 행태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물론 국회가 증인들을 불러다 놓고 몇시간씩 기다리게 하는 등 빌미를 준 건 잘못이다. 그렇다 해도 자신이 느낀 문제점을 차분히 제기하면 되지, "기업에선 이런 식으로 일하면 파면감"이라고 호통치다시피 한 것은 국회를 모욕하는 행위다.

姜씨는 盧대통령의 후원회장이었던 이기명씨의 용인땅 1차 매수자이며, 盧대통령을 후원한 기업인이다. 공교롭게 대통령 주변 인사들이 국회에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게 과연 우연일까. 신당 창당과 盧대통령의 민주당 탈당 등으로 청와대와 국회의 관계가 악화됐는데, 이런 일들이 되풀이된다면 대통령이 어떻게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청와대는 국감 증인 불출석에 개입했는지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