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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장 발부 정국도 태풍권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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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일촉즉발 위기 감도는 여권과 평민>
김대중 평민당 총재에 대한 구인장 발부로 정국은 극도로 냉각, 일촉즉발의 태풍권에 휩싸이게 됐다.
김 총재와 문동환 의원에 대한 구인장이 어떤 방법으로 집행될 것인지에 따라 장외에서 물리적 충돌도 예상되고 있어 6공들어 최대의 정치 위기가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김 총재에 대한 안기부의 조사 방침은 구인장 발부로 이제 후퇴할 수 없게 됐으며 평민당도 굳이 강제 구인 하면 응해서 반박 논리를 펴되 경우에 따라선 장외 투쟁 불사로 나와 어차피 충돌은 불가피하게 됐다.
그 동안 강온 양면을 보여온 여권의 입장 정리는 3차 출석 요구서 시한이 지난 24일 오후 삼청동에서 열린 민정당과 공안당국간의 당정회의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에서 안기부 측은 서경원 의원 밀입북 사건과 김 총재의 관련성을 설명하고 반드시 진술을 받아야겠으며 따라서 구인장 발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에 협상론을 주장했던 민정당 당직자들도 대체로 수긍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적으로 강영훈 총리가 26일 저녁 박준규 대표위원을 공관으로 초청, 구인장 발부에 따른 여파에 관해 숙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민정당 측은 27일부터 『구인장은 수사당국이 한 일』이라며 완전히 뒷전으로 물러서 버렸다.
일단 강경 방침이 정해진 이상 평민당 측과 당분간 대화가 불가능할 것으로 본 것이며 이것은 안기부의 수사 방침이 확고하다는 사실을 반증함과 동시에 사건이 종결된 후 뒷수습을 위해서라도 일단 민정당은 사태에 개입하지 않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여권의 방침이 이처럼 강경으로 굳어진 것은 서동권 신임 안기부장 팀의 강경 방침이 정치권내 파장을 우려한 민정당과 여권 내 온건론을 압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의 반 좌경 여론을 등에 업고 공안정국을 통해 주도권을 잡았다고 보는 여권 내 강경 세력들은 당내의 협상론에 제동을 걸었다는 것이며 노 정부도 구인을 강행하는 쪽이 실보다 득이 많다고 분석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안기부 측은 서 의원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 관련자들의 진술 등에서 김 총재가 서 의원 사건은 물론 최근 잇달아 발생한 문익환 목사·임수경 양 방북사건 등 공안사건들에 연루 돼 있다는 심증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김 총재의 대북 친서 전달설이 보도되고, 평민당이 그것을 안기부의 공작으로 물고 늘어지고 비판적 여론이 일자 구인장을 강행함으로써 김 총재의 혐의를 공개, 반격을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안기부 측이 지적하고 있는 김 총재의 「관련 혐의」는 서 의원 밀입북 사실의 사전인지에 따른 단순 불고지 혐의를 넘어서고 있다. 즉 △서 의원 입당 및 공천에의 관계 △문익환 목사 및 임수경 양 입북 관련 △서 의원 밀입북 시 사전 협의·경비 지원 및 메시지 전달 가능성 △서 의원에 대한 북한의 지령 수행에 협의 여부 △89년 1월 유럽 여행 당시 북한대사 접촉 여부 등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보안법 등 반 국가사범으로 몰아갈 수도 있는 내용들이다.
안기부는 이러한 혐의 사항에 대해 관련자들의 증언을 제시하고 있는데 실제 물을 내용은 이보다 훨씬 많아 2백 60여 개 항목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정당의 한 고위당직자는 『김 총재는 피의자가 아닌 참고인』이라며 『서 의원 사건에 대한 조사만 하면 된다』고 구인의 의미를 축소했다.
그러나 안기부 측이 조사 내용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은 서 의원의 혐의를 반증할 「참고용」이라기보다 김 총재의 혐의에 집중하고 있다.
안기부 측이 김 총재에 대한 구인 조사를 서 의원 사건 마무리를 위한 참고인 조사로 끝낼지, 또는 조사 과정에 따라 반 국가사범으로 몰아갈 의도가 있는지, 아니면 김 총재의 운신의 폭을 제한하는 족쇄로 두어둘지는 분명치 않다.
안기부 측은 표면적으로 『그저 법대로 할 뿐』이라며 강경 방침 고수를 주장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당장 평민당과 전면전을 벌일 태세는 아닌 것 같다. 오히려 김 총재 측 반응을 봐가며 오는 8월 6일로 되어 있는 구인장 집행 시한을 최대로 활용, 계속 강제 구인의 압박을 가하며 평민당 측 의도를 탐색해 볼 것으로 보인다.
김 총재가 응하든 않든 간에 이런 혐의들에 대한 김 총재 측의 명백한 설명이 없는 한 칼자루는 계속 안기부 측이 쥐고 있고 앞으로 서 의원의 사법 처리 과정이나 문 목사 및 임수경 양 문제를 다뤄 가는 과정에서도 계속 김 총재와 평민당 측에 대한 압력 수단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대중 총재는 광주 수해 현장에서 즉각 기자회견을 갖고 안기부 측 혐의가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하면서 강제 구인 하면 당당하게 응하되 노 정부의 탄압 공작에 맞서 장외 투쟁을 벌이겠다고 강경 투쟁을 선언하고 나섰다.
강제 구인 당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여론을 자극할 생각도 있는 것 같다.
따라서 이대로 가면 평민당과 안기부는 격돌을 피할 수 없으며 그 충격은 경우에 따라선 정계 전체에 미칠 정도로 상당히 심각할 것이다.
앞으로 수사과정에서 김 총재가 그에 쏠리는 혐의를 분명하게 해명, 납득시킨다면 돌파구가 의외로 쉽게 마련되고 정국은 진정될 수도 있으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정국은 헤어나기 어려운 격랑 속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김진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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