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신림동 강간 미수범 구속, 여론재판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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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김정연 사회팀 기자

김정연 사회팀 기자

지난달 28일 '신림동 강간범 영상 공개합니다'는 글이 인터넷을 달굴 때 기자는 야근 중이었다. 야근 업무로 사실 확인을 위해 열어본 해당 영상에는 귀가 중인 한 여성이 집 문을 열고 들어가자 구석에 숨어있던 한 남성이 따라가려고 시도하는 듯한 모습이 담겼다. 간발의 차이로 문은 닫히고 남성은 따라 들어가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1분 넘게 문 앞을 서성이고 노크를 하고 번호키를 눌러보기도 했다.

영상을 보자마자 ‘이 여성은 얼마나 무서웠을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CCTV 장면으로 집에 들어가려고 한 건 명확하지만 집 안에 들어가서 뭘 하려고 했는지 입증하긴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상을 보면서 공감한 두려움과는 별개로 여러 사건을 지켜보면서 생긴 '학습된' 의구심이었다.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지난달 30일 이 남성에 대해 주거침입과 강간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피의자가 10분 이상 문을 강제로 열려고 시도한 상황은 ‘협박’이고, 협박으로 ‘강간죄’ 실행에 착수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사유를 밝혔다. 하지만 이후 “물증 없이 심증만으로 구속을 주장하는가” “무리한 여론재판 아니냐”는 비난이 나왔다.

이 남성은 결국 구속됐다. 법원은 지난달 31일 문제의 남성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행위의 위험성이 큰 사안으로 도망 염려 등 구속 사유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이 남성이 2012년 길거리에서 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과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강간미수’ 혐의 적용에 대한 비판도 다소 사그라졌다.

이번 사건이 알려진 뒤 인터넷에서는 ‘번호키에 자국이 남지 않게 랩을 붙이고 누른다’ ‘엘리베이터에 사람이 있으면 일부러 다음 엘리베이터를 탄다’ 등 일상 속에 있는 공포를 털어놓는 여성들이 적지 않았다. 처음 영상을 공개한 트위터 계정주는 “1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강간미수’라는 단어가 성급한 표현일 수 있지만 만약 남성이 실제로 집에 들어간 경우를 생각해 보면 과연 성급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경찰청의 '2017 범죄통계'에 따르면 미수를 포함한 강간, 유사강간 등 범죄는 1년간 6163건 발생했다. 하루에 16건이 넘는다. 강제추행은 1년에 1만7947건, 하루에 49건꼴이다.

이번엔 여성이 CCTV가 있는 곳에 살았기 때문에 수사가 진척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공감했던 건 그간 ‘벌어지기 전’ 일이기 때문에 처벌할 수 없었던 적이 많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여론재판’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들끓는 여론의 배경에는 '나도 언제든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말로만 안전을 얘기하지 말고 실질적인 안전을 보장하는 게 정부와 수사기관이 해야할 일이다.

김정연 사회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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