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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에 국회의원 108명 목줄 잡혀… '108번뇌' 사로잡힌 정치권

중앙일보

입력

장제원 자유한국당 간사가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복도에서 이정미 정의당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을 저지하며 당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장제원 자유한국당 간사가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복도에서 이정미 정의당 대표를 비롯한 의원들을 저지하며 당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지금은 수면 아래에 있지만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자유한국당 A의원)
“진행상황에 대해 일일이 신경쓰지 않으려 한다”(바른미래당 B의원)
“내년 총선 공천심사에는 영향을 못줄거라고 본다”(자유한국당 C의원)

정치권이 검찰과 경찰을 곁눈질하며 ‘108번뇌’에 사로잡혔다. 검·경이 지난달 선거법·공수처법 등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국회에서 벌어진 충돌 사태과 관련, 현역의원 108명에 대한 본격 수사에 나선 탓이다. 사건 수사를 맡은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지난주부터 참고인 조사를 시작한 데 이어 국회 사무처에서 제출 받은 210기가바이트 분량의 폐쇄회로(CC)TV 분석에도 착수했다.

수사 향배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내년 총선 등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며 셈법에 분주하다. “수사기관이 정치권의 목줄을 쥔 꼴”이란 비유도 나온다. ①현역의원들이 대규모로 피고소·고발됐고 ②국회법(국회선진화법)은 고소·고발을 취하해도 처벌을 하는데다 ③정치인에게 치명적인 피선거권 제한 조항 등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고소·고발을 당한 현역의원은 모두 108명이다. 10억원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30일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고 의원직을 상실한 이우현 한국당 의원을 뺀 국회 재적의원 299명의 3분의 1이 넘는 숫자다. 정당별로는 한국당(58명), 민주당(40명). 바른미래당(6명), 정의당(3명) 순이다. 무소속인 문희상 국회의장도 포함됐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국회에서 여야 협상을 통해 문제를 풀기도 어렵다. 주요 고발 이유가 된 국회법 165·166조(국회선진화법)는 고소·고발을 취하해도 처벌을 하도록 돼있는 ‘반의사불벌죄’다. 여야가 합의해 소를 취하해도 검찰이 혐의가 있다고 판단하면 현역 의원들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길 가능성이 있다.

처벌규정도 정치인에게는 치명적이다. 폭력행위 등을 통해 국회 회의를 방해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돼있다. ‘국회 회의 방해죄’로 5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을 선고받는 경우에는 5년간, 집행유예 이상을 선고받는 경우에는 10년간 피선거권도 제한된다. 수사·재판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경우 자칫 내년 총선 출마가 어려운 현역의원도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양석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를 비롯한 의원들과 보좌관들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 앞에서 여당의 공수처법 등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제출을 저지하기위해 몸으로 막아서고 있다. 국회의장의 경호권 발동으로 국회 방호원들이 의원들을 끌어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뉴스1]

정양석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부대표를 비롯한 의원들과 보좌관들이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안과 앞에서 여당의 공수처법 등 패스트트랙 지정 법안 제출을 저지하기위해 몸으로 막아서고 있다. 국회의장의 경호권 발동으로 국회 방호원들이 의원들을 끌어내려고 시도하고 있다. [뉴스1]

가장 골치가 아픈 건 자유한국당이다. 소속 의원(113명)의 절반이 넘는 숫자가 수사선상에 올랐다. 황교안 대표는 지난달 29일 “당력을 다 기울여서 반드시 끝까지 고소고발 당한 분을 지켜내겠다”고 약속했지만, 막상 검찰이 기소를 할 경우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가 않다.

내년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두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당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받을 것”이라는 분위기도 적지 않다. 당의 한 초선의원은 “패스트트랙 국면에서 결사항전해 고발 당한 건 사실 훈장 아니냐. 공천에서 불이익을 받지는 않을 걸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대법원에서 피선거권 제한 선고를 받으면 정치적으로는 사형선고를 받는 것”이라며 “눈앞의 공천만 바라볼 일이 아니다”라는 얘기도 나온다.

수사에 대한 전망 역시 엇갈리고 있다. 검사 출신인 한국당의 한 의원은 “경찰의 정권 눈치보기가 도를 넘었다. 수사 속도도 다른 정치 사안과 달리 빠른 편”이라며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대구·경북(TK) 지역구를 둔 한 한국당 의원은 “정권 차원에서도 역풍이 우려돼 일방적으로 야당 탄압에 나서지는 못할 것으로 본다”며 “사보임이 불법이었으니 회의개의도 적법하지 않았다. 이 문제를 계속 따지겠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위기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우리는 결과에 대해 걱정 안 한다. 정당한 업무집행을 방해한 사람이 처벌을 받아야지 그걸 막으려 한 사람이 처벌 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보질 못했다”고 말했다.

한영익·김경희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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