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히트상품 성공학(25)] “알칼리수 사용”… 웰빙 강조 대박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직원들이 주말까지 반납해 가면서 열심히 해준 덕에 저희 신제품 ‘처음처럼’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런 성과를 바탕으로 저희 회사는 제2의 도약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저와 회사는 직원들과 그 가족 분들의 노력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3월 말 780여 명의 두산주류BG 직원들의 집에는 이런 내용을 담은 편지와 함께 케이크가 하나씩 배달됐다. 보낸 사람은 한기선 사장. 2월 초 내놓은 신제품 소주가 “제대로 뜨고 있다”고 본 한 사장이 직원들에 대한 감사와 함께 앞으로도 더 열심히 하자는 뜻에서 보낸 것이었다.

한 사장과 두산주류 임직원들이 이처럼 잔뜩 고무된 것은 신제품 소주 처음처럼이 그야말로 무서운 속도로 팔렸기 때문이다. 1000만 병 팔린 것이 첫 선을 보인 지 불과 17일 만이었고, 3000만 병(100만 상자) 기록은 51일 만에 달성했다. 이어 100일째 되는 날인 5월 17일까지 모두 6300만 병이 팔렸다. 국내 소주시장의 맹주격인 진로의 ‘참이슬’이 출시 초기 세웠던 기록을 모두 갈아치운 것이다. 7월 중순이면 1억 병 판매가 예상된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요즘 주당(酒黨)들 사이에서도 ‘처음처럼’이 단연 화제가 되고 있다. 음식점이나 술집에서는 ‘소주’를 주문하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처음처럼’을 달라는 요구가 늘고 있다. 술꾼들의 이런 변화는 시장 점유율 확대로 나타나고 있다. 신제품을 내놓기 직전인 지난 1월 소주 시장에서 5.2%(수도권은 6.4%)를 차지하는데 그쳤던 두산은 5월에는 8.7%(수도권 13.4%)로 시장 점유율이 껑충 뛰었다. 서울 강남 지역에선 점유율 50%가 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소주 시장에서의 순위도 6위에서 3위로 올라섰다. 2위 자리를 되찾는 것도 시간문제라고 자신한다. 그동안 수년째 쉬고 있던 공장의 일부 생산라인도 요즘 24시간 돌아가고 있다. 판매량 증가 추세에 따라 공장 증설도 검토 중이다. 지난 수년간 참이슬에 밀려 시장을 내주기만 했던 두산으로서는 대단한 변화다.

사실 두산의 소주 사업은 ‘그린’ 소주가 인기를 끌었던 1998년 전국시장에서 17.2%를 기록한 이후 줄곧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2001년에 내놓은 ‘산’도 이듬해 6.67%로 점유율이 소폭 상승한 뒤 계속 줄어들기만 했다.

게다가 두산의 주력사업이던 OB맥주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한때 국내 최대의 술 회사였지만, 이거다 하고 내세울 만한 술이 없어져 버린 셈이다.
두산주류 직원들의 사기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소주 분야에서 2류, 3류로 밀린다는 위기의식도 커졌다. 바로 이 무렵 개발된 처음처럼이 소주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처음처럼을 마셔본 애주가들의 평가는 “술맛이 다르다”는 것이다. 알코올 도수가 종전 21도에서 20도로 낮아져 마시기가 한결 부드러워진 때문이다. 맛 차이를 느끼는 이유는 또 있다. 보통 물이 아닌 알칼리수를 원료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두산주류 측은 “처음처럼은 pH 8.3의 알칼리수를 사용해 만드는데, 알칼리수는 입자 크기가 작아 알코올과 잘 섞여 술 맛이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알칼리수에는 자연 미네랄이 풍부해 숙취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과거 소주업체들이 ‘부드러운 맛’과 ‘깨끗한 맛’을 강조했는데, 여기서 한걸음 나아가 웰빙 개념을 접목한 것이다.

알칼리수를 사용한 데는 한 사장의 개인적인 경험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대장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쉬던 무렵 하루 3ℓ씩 알칼리수를 마시면서 암치료에 상당한 효과를 봤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두산주류 사장에 선임되면서 신제품 개발에 나선 한 사장이 주목한 것이 바로 물이었다. 소주는 물이 80%로 가장 기본적인 원료인 만큼 물이 달라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이다. 지난 90년대 하이트맥주가 ‘지하암반수’를 원료로 사용해 맛을 차별화해 OB맥주를 무너뜨린 사례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두산주류의 김일영 상무는 “과거 산 소주는 녹차 성분을 넣어 차별화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는데, 이번엔 이를 교훈삼아 아예 근본 문제인 물을 차별화했다”고 설명했다.

무려 네 글자로 이뤄진 상표도 화제가 되고 있다. 그동안 두산의 소주 브랜드는 ‘그린’과 ‘산’으로, 한두 글자로 이뤄진 짧은 단어였다.

진로와 지방 소주업체 제품 역시 마찬가지였다. 새 브랜드가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의 시 ‘처음처럼’에서 따온 상표라는 것도 화제가 됐다. 실제 처음처럼의 브랜드는 신 교수의 서체와 그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술 마신 다음날에도 몸 상태가 처음처럼 유지된다’는 두산주류 측의 마케팅 전략과, 시대의 지성인으로 꼽히는 신 교수의 이미지가 겹쳐지는 것도 처음처럼의 히트 요인이 됐다.

그동안 국내 소주업계를 이끌어 온 진로가 하이트맥주에 인수된 이후 예전의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도 두산주류로선 호재가 되고 있다. 두산의 신제품에 대응해 진로도 알코올 도수를 20.1도로 낮춘 신제품을 내놓았으나, 두산이 브랜드를 과감히 바꾼 것과 달리 참이슬 브랜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술꾼들의 기호 변화도 도움이 됐다.

그동안 변화가 없던 참이슬 로열소비층(참이슬만 마시는 고객)이 불과 1년 만에 20%에서 11%대로 줄어드는 등 종전에 보기 힘든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장이 진로 출신이어서 진로의 영업전략 등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두산 측은 출시 초기 제품 알리기에 이어 최근엔 제품의 장점을 알려주고 소비자들의 로열티를 높이는 쪽으로 마케팅 전략을 바꿔가고 있다.

이슈 만들어 눈길 끌기=두산이 알코올 도수를 1도 낮춘 신제품을 내놓자 진로는 물론 지방 소주업체들도 너나없이 알코올 도수를 낮춘 제품을 내놓았다. 저도주 경쟁에 불을 붙여 일단 기선을 잡은 두산은 마케팅에서도 새로운 방식을 선보였다. 출시 초기 120㎖짜리 미니어처병을 150만 개 만들어 길거리에서 나눠주며 제품 알리기에 나섰다.

미니어처는 양주업체에선 흔히 만들지만 소주업체로는 처음이었다. 또한 ‘처음돌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주요 지하철역과 대학가 등에서 퍼포먼스를 벌이는 한편 휴대전화 컬러링을 만들어 소비자들에게 서비스했다. 여름 휴가철을 앞둔 요즘 12병을 사는 고객에게는 소주를 냉장보관할 수 있는 쿨링백을 판촉품으로 나눠주고 있다. 이 같은 마케팅 공세에 경쟁업체들도 곧바로 같은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25~35세대가 주 소비층=두산이 처음처럼을 내놓으며 고객층으로 겨냥한 것은 25세에서 35세 사이의 젊은층. 산 소주 때 중점 목표로 정했던 ‘30대 화이트칼라’보다 넓어졌다. 김 상무는 “산은 타깃을 좁게 잡았지만 장기적으로는 소주의 주력 소비층인 20대 중반~30대 중반을 모두 겨냥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여성 소비자들에게도 기대를 걸고 있다. 여성 경제인구가 늘어나는 추세인 데다, 여성들의 경우 부드러운 저도주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저가 공세로 유통망 공략=처음처럼의 공장 출고가격은 한 병에 730원. 종전 제품보다 70원이 싸다. 수퍼마켓이나 할인점의 판매가격도 경쟁사 제품과 차이가 난다. 소주가 주로 소비되는 음식점에서 받는 값은 대부분 3000원으로 변함이 없다. 늘어난 중간마진을 주류도매상과 음식점, 유통업체에서 챙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업체들은 당연히 처음처럼을 챙기게 됐다. 김 상무는 “유통업체들이 처음처럼을 팔아야 할 분명한 이유를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도움말=김용태마케팅연구소

유규하 편집위원· (ryuha@joongang. co. kr)

매거진 기사 더 많이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