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트럼프, 진주만 공습 항모 ‘가가’ 이름 딴 전투함 올랐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에 승선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왼쪽)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내외와 함께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기지에서 이즈모급 호위함 ‘가가’에 도착해 일본 장교의 안내를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에 승선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 여사(왼쪽)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내외와 함께 가나가와현 요코스카 기지에서 이즈모급 호위함 ‘가가’에 도착해 일본 장교의 안내를 받고 있다. [AFP=연합뉴스]

28일 오전 10시30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를 태운 전용 헬기 ‘마린 원’이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의 요코스카(橫須賀) 기지에 정박 중인 일본 해상자위대 이즈모급 호위함 ‘가가’의 갑판에 내려앉았다. 미리 도착해 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부부가 트럼프 대통령 부부를 맞았다.

미·일 정상 동반 승선 숨은 코드 #미군이 미드웨이서 격침한 항모 #73년 만에 전투함으로 부활시켜 #아베, 헬기 이어 F-35B 탑재 계획 #트럼프 ‘전쟁 가능 일본’ 손 들어줘

길이 248m, 폭 38m에 만재배수량이 2만7000t인 ‘가가’는 지난해 말 일본 정부가 사실상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기로 결정했다. 지금은 헬기가 이착륙하는 가가의 갑판을 개조해 미국의 수직이착륙 스텔스 전투기인 F-35B를 운용할 예정이다. 이를 놓고 일본 국내에서도 “공격 무기인 항모를 보유하는 건 평화헌법 위반”이란 주장이 끊이지 않았다. 그런 가가함을 트럼프 대통령이 국빈 방일 3박4일의 마지막 날 찾으며 아베 정부의 군사대국화 의도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국제사회에 알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두 정상 부부와 주요 관계자들은 대형 엘리베이터처럼 내려가는 갑판을 통해 일본 해상자위대와 주일미군 등 500여 명이 기다리고 있던 격납고에 도착했다. 박수와 함께 스마트폰의 셔터 소리가 이어졌다.

관련기사

자신을 ‘자위대 최고지휘관’으로 소개한 아베 총리는 “일본과 미국의 정상이 함께 자위대와 미군을 격려하는 건 사상 처음”이라며 “미·일 동맹은 전례 없이 강해졌고, 우리가 가가에 함께 서 있는 것이 그 증거”라고 목청을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해군 제7함대의 병사와 일본 해상자위대 대원이 함께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며 “미군 선박과 동맹국 함선이 함께 어깨를 맞대고 있는 이곳은 항구적인 힘과 파트너십을 상징한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가가 격납고에서 “내 친구인 아베 총리에게 감사를 전한다”며 “정말 훌륭하다. 강한 결의로 일본의 방위능력을 높이려 하고, 미국의 안전을 높이는 데도 공헌하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방위상도 이날 양국 정상이 가가함을 찾은 데 대해 “미국과 일본이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만들어 나간다는 의지를 대외에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가가함엔 미·일 동맹의 과거·현재·미래 코드가 숨겨져 있다. 그 최종 목적지는 ‘군사대국 일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가가함의 과거·현재·미래=‘가가’는 원래 일본 제국주의 시절 항공모함의 이름이었다. 1921년 전함으로 진수한 가가함은 28년 항모로 개조돼 일본의 주력 항모로 활약했다. 32년 상하이 사변과 37년 중일전쟁에도 참전했다. 41년 12월 7일 일본이 하와이 진주만의 미군 기지를 공습할 때 선봉에 선 게 가가함이었다. 그러다 1942년 6월 4일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 해군의 급강하 폭격기의 공격을 받고 침몰했다.

일본제국의 항공모함 가가함은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 공격으로 격침됐다.

일본제국의 항공모함 가가함은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 공격으로 격침됐다.

1대 가가함이 침몰한 지 73년 만인 2015년 8월 27일 2대 가가함이 진수됐다. 만들 때부터 항공기가 뜨고 내릴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일본 방위성은 원래부터 항모를 염두에 뒀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하지만 주일 한국대사관의 국방무관을 지낸 권태환 국방대 교수는 “가가함에서 항공기의 창정비(완전히 분해한 뒤 다시 조립하는 정비)가 가능하다”며 “이는 처음부터 원거리 작전에 투입하도록 만든 항모라는 의미”라고 단언했다.

아베 정부는 결국 가가함을 항모로 바꾸기로 했다. 가가함에 F-35B 운용 능력을 더하는 개조 작업을 내년 시작한다. 동시에 아베 정부는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보통국가’로 만들려고 한다. 보통국가는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자위대’가 ‘일본군’으로 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게 아베 정부의 속내다.

2015년 새로 만든 일본 해상자위대 헬기탑재 호위함인 가가함 .

2015년 새로 만든 일본 해상자위대 헬기탑재 호위함인 가가함 .

이런 가가함에 트럼프 대통령이 탑승하는 건 과거는 관심 없고 현재의 실리를 따지겠다는 트럼프식 계산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이 F-35 전투기 105대를 추가 구매키로 한 계획에 대해 “일본은 동맹국 중 F-35를 가장 많이 보유하게 되고, 그 전투기들이 대형 함선에 탑재된다”고 평가했다.

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승선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평화헌법 개정과 보통국가를 꿈꾸는 아베 총리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미국은 일본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하는 세력으로 쓰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승선은 평화헌법에 따른 일본 군사력 사용의 기본인 ‘전수방위 원칙’(침공한 적을 일본 영토에서만 군사력으로 격퇴한다는 원칙)을 무너뜨리려는 아베 정부에 눈을 감아준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가가함은 향후 미국 해군과 함께 남중국해의 해역을 지나가는 ‘항행의 자유’ 작전에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가가함 승선을 마친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요코스카 기지 내 정박 중인 미군 강습상륙함 ‘와스프’를 찾아 미군 병사들을 격려했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 부부는 하네다 공항을 통해 귀국길에 올랐다.

◆트럼프, 동해를 일본해로 지칭=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와스프’에서 연설하며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로 지칭했다. 그는 미군 장병들에게 “여러분들은 황해(the Yellow Sea), 일본해, 동중국해(the East China Sea), 그리고 남중국해(the South China Sea)를 자부심을 갖고 지킨다”며 “여러분들은 조국과 동맹국을 적의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방어한다”고 말했다. 외교가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동해(East Sea)’ 대신 ‘일본해’라는 명칭을 썼을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해’ 발언에 대해 직접적인 논평을 피한 채 “확인해서 말씀드릴 사항이 있다면 말씀드리겠다”고만 말했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서울=이철재·전수진 기자 sswoo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