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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수상도 진영싸움 이용하는 정치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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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조국(左), 나경원(右)

조국(左), 나경원(右)

봉준호 감독의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을 놓고 정치권이 진영 싸움의 카드로 활용하다 여론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인터넷상에선 “경사든, 흉사든 정치권은 ‘기·승·전·진영싸움’으로 활용할 줄 밖에 모르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조국 “문화계 블랙리스트 생각나” #나경원 “계속 거짓말하는 문 정부 #알랭 들롱 리플리증후군 떠올라”

시작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봉 감독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26일 오후 조 수석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봉 감독의 수상 소식과 함께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언급했다. 조 수석은 문재인 대통령이 봉 감독에게 보낸 축전을 공유하면서 “이 경사를 계기로 박근혜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을 다시 본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2017년 작성된 두 건의 기사를 첨부했다. 봉 감독이 과거 칸 영화제에 참석해 ‘한국 예술가들의 블랙리스트 트라우마’를 언급한 기사와, 그해 9월 국정원 개혁위원회가 공개한 ‘문예계 내 左(좌)성향 인물 현황’ 일명 블랙리스트 관련 기사였다. 봉 감독도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하루 뒤인 27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상임위원장·간사단 연석회의에서 봉 감독에 대해 축하의 뜻을 전하며 “알랭 들롱이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영화 ‘태양은 가득히’에서 알랭 들롱의 역할이 거짓말을 하면서 스스로 거짓말이 아닌 진실로 믿는 톰 리플리”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가 ‘지금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계속 거짓말을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리플리증후군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허구의 세상을 믿으며, 거짓말과 행동을 일상으로 하는 인격 장애를 ‘리플리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조 수석과 나 원내대표의 이 같은 언급에 대해 정치인들이 한국 영화 100년 사상 최초의 황금종려상 수상을 그 자체로 축하하거나 영화 등 한국 예술 정책에 대한 고무 및 예술인 격려로 방향을 잡지 않고, 상대편 때리기 방편으로 쓰기에만 몰두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 감독은 나 원내대표에 대해 “봉 감독을 감흥 없이 축하하고,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은 알랭 들롱을 언급하며 결국 문재인 정부 폄훼에 나섰다”며 “파티장에 검은 상복 입고 나타나 곡 하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다른 네티즌은 조 수석에 대해 “봉준호 감독 이름조차 전 정권을 비난하기 위한 기름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배재성 기자 hongdoy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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