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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해지면 학폭 다 나온다"…'효린 쇼크' 10대들 인성관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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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효린. [일간스포츠]

가수 효린. [일간스포츠]

"효린에게 3년간 학교 폭력을 당했다"

25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폭로 글의 파장은 컸다. 수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아이돌 출신 가수 효린에 대한 대중의 시선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사흘 만에 효린과 문제를 제기한 동창생이 원만한 합의에 이르렀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효린의 이미지 회복은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대세 밴드로 떠오른 '잔나비'도 암초를 만났다. 잔나비 멤버 유영현이 학교 폭력 의혹에 휘말리면서다. 결국 유영현은 수년 간 동고동락하며 키워온 밴드에서 퇴출됐다.

연예계에 '학폭' 주의보가 떨어졌다. '인성 논란', '일진 논란'은 전에도 있었지만 최근 '학폭 폭로'는 미투, 빚투처럼 피해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면서 운동 양상을 띠는 모양새다.

인디밴드 잔나비 멤버였던 유영현. [일간스포츠]

인디밴드 잔나비 멤버였던 유영현. [일간스포츠]

연예계의 '학폭 논란'은 10대들이 주로 참가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먼저 점화됐다.

2017년 방송된 Mnet '프로듀스 101' 시즌 2에서는 출연자 한종연이 관련 의혹에 휘말려 출연을 중단했다. 당시 그의 기획사는 "한종연 군으로 인해 상처받은 친구에게 깊은 사과의 말을 전하며, 프로그램 자진 하차를 결정하게 됐다"고 발표했다.

현재 방송 중인 '프로듀스X101'의 참가자인 윤서빈도 첫 방송이 나간 직후 학폭 가해자로 지목받으면서 바로 퇴출됐다. 그는 첫회에서 1위를 차지하며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소속사 JYP에서도 방출되는 처지가 됐다.

이처럼 매 시즌 학폭 논란이 이어지자 오디션 프로그램에선 참가자들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직접 청소년들을 향해 당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프로듀스X101' 연출을 맡은 안준영 PD는 제작발표회 때 "연습생들과 세 번 미팅했다"며 인성 논란을 방지하려는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를 맡았던 JYP 박진영 대표는 참가자들에게 ""조심하면 언젠가 걸리고, 조심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학폭 고발, 왜 이제서? 

최근 학폭 논란에 휩싸인 인기 밴드 '잔나비'. [일간스포츠]

최근 학폭 논란에 휩싸인 인기 밴드 '잔나비'. [일간스포츠]

잔나비는 20대 후반, 효린은 이제 막 30대가 된 가수들로 이미 중·고등학교 시절을 오래 전에 지났다. 때문에 '이제서 학폭이 문제가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구심 섞인 시선도 있다.

이에 대해 피해자들은 "여러 차례 말했지만 묵살당했다",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등의 이유를 내놓는다. 효린의 동창생도 "졸업사진 첨부하며 두 번 얘기했지만 '어그로'라며 반대가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잔나비 사건을 보며 억울함이라도 풀고 싶어 폭로했다"고 했다. 실제 친구 사이의 다툼으로만 여겨지던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여겨지면서 피해자들이 직접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이다.

학폭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10~20대는 학교 폭력의 당사자로, 30~40대는 부모의 입장에서 학폭 문제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페이스북에 초성 이름만 올려도 학폭위 열려" 

서울 한 초등학교 교실.[연합뉴스]

서울 한 초등학교 교실.[연합뉴스]

학교 현장에서도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수도권의 한 중학교 A 상담교사는 "요즘엔 페이스북에 욕설과 함께 초성 이름만 올려도 학폭위가 열린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사소한 일로 여겨졌던 사안도 현장에서는 학폭위 개최 이유가 된다는 설명이다.

이런 경향은 초등학교에서 더 두드러진다. 서울 지역 초등학교 B교사는 "지우개를 빼앗은 일로도 학폭위가 열린 적이 있다"며 초등생들이나 학부모들이 폭력에 민감한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나쁜 일 하면 나중에 드러난다"…학습효과

윤서빈. [프로듀스 101]

윤서빈. [프로듀스 101]

이처럼 학교 폭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연예인을 유망 직업으로 꼽는 10대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나쁜 일을 하면 나중에 드러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잔나비에 이어 효린에 대한 폭로가 나온 것은 미투운동처럼 과거의 학교폭력 폭로가 일종의 운동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의미"라며 "운동 성격을 띤 이상 앞으로도 폭로가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어 "연예계는 호감으로 움직이는 비즈니스인데 이제는 재능만큼 인성도 중요한 요소가 됐다"며 "인성이 매력을 구성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운 '인성 경쟁력' 시대"라고 말했다.

A 교사도 "10대들 사이에서 페이스북을 통한 메시지 전송, 소식 공유 등 소통이 활발하기 때문에 '어느 지역 누가 누구에게 맞았다더라' 등의 사례 공유가 빠르다"며 "페이스북에서 잔나비·효린·윤서빈 이야기도 나온다. (학생들이) 자신이 유명한 사람이 될 경우 과거의 행적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을 하면서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B 교사도 "학교 현장에서 점점 약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 형성되는 것을 체감한다"고 말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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