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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구실 못하는 퇴직·개인연금, 부족한 생활비 이렇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진영의 은퇴지갑 만들기(6)

경주에 있는 최 부잣집 본가. 옛날 옛적 최 부자는 며느리를 구할 때 '쌀 한 말로 한 달 살기 시험'을 치렀다. 많은 며느리 후보가 쌀을 아끼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 와중에 쌀을 활용해 새로운 일감을 얻고, 쌀을 불리는 이도 있었다. 은퇴자산 관리도 마찬가지다. 아끼고 쪼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중앙포토]

경주에 있는 최 부잣집 본가. 옛날 옛적 최 부자는 며느리를 구할 때 '쌀 한 말로 한 달 살기 시험'을 치렀다. 많은 며느리 후보가 쌀을 아끼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 와중에 쌀을 활용해 새로운 일감을 얻고, 쌀을 불리는 이도 있었다. 은퇴자산 관리도 마찬가지다. 아끼고 쪼개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중앙포토]

우리가 은퇴설계를 하는 이유는 원하는 은퇴생활에 필요한 자금 마련을 위해 보유 자산을 어떤 상품으로 굴릴지 방향을 잡기 위해서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운용하느냐는 어떤 ‘은퇴상품’을 구매하느냐의 문제다.

그럼 은퇴상품이란 무엇일까. 은퇴상품은 고금리 상품이나 중위험·중수익 상품과 마찬가지로 공식적인 것이 아닌, 개념적이고 마케팅적인 용어다. 예전에는 보통 연금류의 금융상품을 지칭하는 말로 써왔다. 그러나 요즘 은퇴상품은 은퇴용 자산 운용에 적합한, 또는 적합하게 튜닝한 금융상품으로 이해해야 한다.

은퇴상품을 본격적으로 다루기 전 옛날이야기를 하나 하겠다. 경주의 최 부자가 며느리를 구하기 위해 여러 미혼 여성들에게 쌀 한 말로 한 달 살기 시험을 보게 했다. 어떤 이는 받은 쌀을 90봉지로 쪼개 살았고, 어떤 이는 쌀로 죽을 끓여 먹었고, 어떤 이는 하루에 한 끼로만 때웠다. 그런데 한 며느리 후보는 오자마자 쌀로 떡을 만들어 동네에 나누어 주면서 바느질감을 받아 왔고, 한 달 뒤에는 오히려 쌀 한 말을 남기기까지 했다.

쥐꼬리 퇴직연금 수익률, 알고 보니

이런 옛이야기를 하는 것은 은퇴자산 관리가 단순히 알뜰하게 있는 돈을 쪼개 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최근 퇴직연금에서 나타나고 있다. 퇴직연금 수익률이 1%대로 정기예금보다 낮고, 기금화도 지지부진한 데다가 수익률보다 수수료가 높다는 등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퇴직연금의 80% 이상이 원리금 보장형으로 애당초 예금 금리와 큰 차이가 있을 수 없다. 원리금 비보장형에 들어가는 펀드도 시중에 나와 있는 것이어서 시장의 평균 수익률 추세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게다가 퇴직연금의 상품은 고객이 선택하기 때문에 퇴직연금의 수익률도 어찌 보면 금융회사의 운영능력의 차이라기보다는 금융회사의 퇴직연금 고객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연금 이외에 은퇴자금의 운용을 알아서 해주는 곳은 없다. 따라서 본인의 은퇴자금 운용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앙포토]

국민연금 이외에 은퇴자금의 운용을 알아서 해주는 곳은 없다. 따라서 본인의 은퇴자금 운용에 대해 적극적으로 공부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앙포토]

물론 금융기관에서 좀 더 수익률이 높고 안정적인 상품을 골라 추천하느냐의 차이는 있다. 결국 문제의 근간에는 회사 담당자, 가입한 직원, 금융회사, 자산운용사, 금융당국 누구도 수익률에 대해 책임지지 않고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는 현실이 있다. 이런 현실에서 퇴직연금을 기금화해도 누가 기금운용위원으로 나설지 의문이다.

국민연금 이외에 은퇴자금의 운용을 알아서 해주는 곳은 없다. 따라서 본인의 은퇴자금 운용에 대해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 투자위험에 대한 대책도 마련돼야 한다. 은퇴자산관리와 은퇴상품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한 건 그래서다.

은퇴자산을 굴리기 위해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전 생애에 걸친 은퇴자산관리의 3개 구간과 6개의 코스, 코스별 은퇴자산의 구성, 그리고 각각의 구성에 맞는 구체적 은퇴상품이다. 우선 전 생애에 걸친 은퇴자산관리는 크게 연령대별로 3개의 구간이 있다. 은퇴자산을 모으는 퇴직 전까지의 축적 구간(만 55세 이전)과 은퇴자산을 재점검해야 하는 크레바스 구간(55~65세), 본격적인 은퇴 생활기로 상속증여까지 포함한 은퇴자산의 분배 구간(65세 이후)이다.

은퇴자산관리의 3개 구간과 6개 코스. [자료 김진영, 제작 조혜미]

은퇴자산관리의 3개 구간과 6개 코스. [자료 김진영, 제작 조혜미]

이 3개의 구간에서 은퇴자산을 운용하는 방법을 크게 6개의 코스로 정리할 수 있다. 제1코스는 전 생애에 걸쳐 은퇴자산을 운용하는 코스다. 이 코스의 가장 대표적인 상품이 국민연금이다. 축적 기간엔 국민연금을 납부하다가 크레바스 구간에서 조정 여부를 한번 판단하고, 수급 개시가 되면 연금을 받는 금융상품이다. 퇴직연금, 연금저축, 개인연금 등 대부분의 연금상품이 원칙적으로 이러한 개념이다.

일반적으로 이들을 은퇴상품이라고 알고 있지만, 퇴직연금이나 연금저축 등 대부분의 연금상품 가입자는 축적단계가 끝나면 크레바스 구간에서 연금이 아닌 목돈으로 받는다. 퇴직연금의 경우 55세 퇴직 시점에서 퇴직금을 연금으로 받겠다는 사람이 전체의 2%가 안 된다.

그냥 퇴직금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연금이라는 용어를 쓰기가 무색하다. 그도 그럴 것이 퇴직연금의 5년이나 10년 수익률이 금융권 구분 없이 대략 연 2~3%로 대출금리보다 낮아 퇴직금으로 대출을 갚는 게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제2코스는 퇴직 직전까지 어떤 형태로든 은퇴자산을 모으는 코스다. 우리가 사회생활하면서 일반적으로 하는 재테크가 대부분 제2코스에 해당한다. 앞에서 언급한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도 원래는 제1코스의 운용 상품이지만, 실제로는 퇴직 시점에서 목돈으로 인출되는 경우가 많아 제2코스 방식으로 운용되는 상품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국민연금은 수령금액이 적고 퇴직연금은 중간정산하는 사람이 많아 실제 은퇴생활로 접어들면 최저생활비도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10년 이후 쏟아져 나온 은퇴상품들

얼핏 보면 은퇴용 상품이 많이 등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면 눈 가리고 아웅인 경우가 많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격의 은퇴자산 관리를 위해서는 은퇴상품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중앙포토]

얼핏 보면 은퇴용 상품이 많이 등장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면 눈 가리고 아웅인 경우가 많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 격의 은퇴자산 관리를 위해서는 은퇴상품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중앙포토]

2010년 이후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은퇴하기 시작하면서 제3코스부터 제6코스의 자산 운용을 위한 은퇴상품이 쏟아져 나온다. 다소 아쉬운 것은 이들 상품이 은퇴용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이 기존 금융 상품을 은퇴용으로 포장한 것이 많다는 점이다. 따라서 은퇴상품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우선 크레바스 구간의 제3코스에선 은퇴자산을 불리기 위해 수익률 중심의 투자를 하지만 동시에 소득도 얻는 방식이 필요하다. 월 지급 형태로 인출해가면서 운용해야 하므로 복리 효과를 누리거나 재투자를 할 수 없어 수익률은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

제4코스는 부족한 은퇴자산의 격차를 메우기 위해 복리나 재투자 등을 통한 수익률 중심의 투자를 하는 운용 방식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투자라고 하기엔 은퇴 자산 성격상 위험을 많이 통제한다. 제5코스는 부동산을 유동화하는 등으로 투자자금을 만들어 제3코스나 제4코스처럼 운용하는 방법이 동원된다.

마지막으로 은퇴자산의 분배구간인 제6코스는 순수한 분배용 상품이 주 운용 대상이 된다. 제6코스의 운용 상품으론 주택연금이나 즉시연금처럼 아예 분배용으로 나온 상품과 함께 주식이나 해외채권·ELS(주가연계증권) 등으로 만든 연금 형태가 있다. 다음부터는 코스별로 구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은퇴상품을 알아보겠다.

김진영 은퇴자산관리연구소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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