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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시각(이승우)|출판문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요즘 시중의 큰 책방에 들르면 전에 못 보던 색다른 풍경을 만나게된다. 신문이나 잡지에 실린 서평을 크게 복사해서 점두에 게시해 놓고있는 것이다. 대학생이나 샐러리맨 풍의 젊은이들이 그 앞에 웅기중기 모여있는 정경은 여간 흐뭇한게 아니다.
우리는 세계 10위 권에 드는 출판대국임을 자처하고 있다. 한햇동안의 출판량만도 3만5천 종을 넘나든다. 매일 평균 1백 종 꼴로 쏟아져 나오는 셈이다. 대형서점에 산더미처럼 쌓인 책 숲에 파묻혀 있노라면 가위 출판대국임을 실감케 된다.
그만큼 우리는 책의 공급과잉 속에 살고 있고, 또 그만큼 책을 선정하는 일조차 어려운 숨막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서평은 단순한 도서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복잡 다기한 우리시대 지적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유효한 수단으로 기능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년에 쏟아져 나온 그 많은 신문 잡지들 중에 서평전문지 하나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진실로 유감이다.
서평지라면 얼른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영국의 주간지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와 미국의 『뉴욕 타임스 북 리뷰』다. 각기 개성이 다르지만 둘 다 그 나라의 성숙한 지적 풍토와 문화지층의 두께를 반영하고 있다. 전자의 경우 무려 32페이지로 우리말로 옮기면 책 한 권 분량이 온통 서평으로 채워진다.
이런 전문지 말고도 웬만한 신문이면 매주 일정한 요일에 일제히 서평란을 싣는다.
이들 서평지나 서평란에는 때로 당당한 대 논문이 실리고 때로는 문학논쟁, 사상논쟁이 펼쳐지기도 한다. 서평의 영향력도 대단해서 어떤 책이 한번 서평에 올랐다하면 일약 베스트셀러로 치솟기도 하고, 명실상부하게 오피니언 리더 구실을 해낸다.
이런 것은 어느 철없는 대학교수의 수필집이 아무런 서평의 여과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오직 매스컴의 호들갑스러움에 편승해서 베스트셀러로 둔갑하는 식의 우리네 경우와는 너무도 다르다.
일본의 경우도 비슷하다. 서평전문 주간지가 두 가지, 게다가 경제지를 포함한 주요 일간지들도 일요판에 2∼3페이지에 걸쳐 서평란을 마련하고있다. 더욱 부러운 것은 어느 신문이건 책 광고가 1면(정치면)에서 시작해 여러 면에 걸쳐 실리는 일이다.
서평 내지 서평문화의 성립기반은 다음의 세 가지다.
첫째는 탄탄한 독서인구의 확립. 이는 서평 성립의 전제조건이지만 거꾸로 서평은 고급독자의 밑변을 넓히는데 기여한다.
둘째는 전문적인 서평가(북 리뷰어)의 존재와 건전한 비평풍토. 서평가로서는 기능적인 전문지식인 보다는 세상을 폭넓게 보고, 어려운 내용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쓸 줄 아는 지성인이 더 바람직하다. 셋째는 보다 중요한 것으로서 좋은 책이 많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상보관계에 있지만, 좋은 책을 많이 내는 일은 전적으로 출판사의 몫이다.
요즘 와서 몇몇 신문에 서평란이 확대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썩 고무적인 일이다. 어느 비평가는 『시대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시하는 것이 서평의 본분』이라고 갈피 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야말로 의문투성이의 시대가 아닌가. 이제 우리도 권위있는 서평전문지 하나쯤은 가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출판저널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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