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꾐에 빠지면 안 돼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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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전화 금융 사기 기법이 점점 진화하고 있다. 경찰·검찰은 물론 시중은행까지 사칭하며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금융감독원이라 칭하면서 이자가 저렴한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해준다며 한 푼이 절박한 사람들을 속이는 사례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를 전하는 소식 가운데는 “꾀임에 넘어간 사람 중 대부분은 현금을 이체해 줬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꾐에 넘어가 평범한 이들이 한순간에 범죄의 늪에 빠지고 있다” 등과 같은 표현을 접할 수 있다.

이처럼 속아 넘어감을 뜻하는 단어로 ‘꾀임’ 또는 ‘꾐’이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것이 맞는 말일까?

그럴듯한 말이나 행동으로 남을 속이거나 부추겨 자기 생각대로 끈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기본형이 ‘꼬이다’이다. ‘꼬이다’를 줄여 ‘꾀다’고 쓸 수도 있다. 명사형으로 만들 경우 ‘꼬이다’는 ‘꼬임’, ‘꾀다’는 ‘꾐’이 된다. 따라서 ‘꼬이다’나 ‘꾀다’, ‘꼬임’이나 ‘꾐’ 어느 것을 써도 무방하다.

‘꾀다’에 피동형을 만들어주는 접사 ‘-이-’를 붙여 ‘꾀이다’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때는 ‘꼬이다’ ‘꾀다’와는 반대로 ‘~에게 꾐을 당하다’ ‘남의 꾐에 말려든다’는 뜻이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피해자들은 이자가 낮은 대출로 갈아타게 해준다는 말에 꾀여(←꾀이어) 사기를 당했다” 등처럼 쓸 수 있다.

서두의 예문 “꾀임에 넘어간 사람 중 대부분은 현금을 이체해 줬다”는 문장에서는 단순히 남을 속이거나 부추기는 것을 뜻하므로 ‘꾀임’이 아니라 ‘꼬임’ 또는 ‘꾐’이라고 해야 한다.

김현정 기자 nomadicwri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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