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무부는 15일(현지시간) 스티븐 비건 대북 특별대표가 러시아 이고리 모르굴로프 외무차관과 통화를 했고 주요 의제가 북한의 비핵화라고 밝혔다.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14일 러시아 소치를 직접 방문한 자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회담을 한 직후다. 미·러 외교장관 회담에서 북한을 놓고 이견이 노출되자 비건 대표까지 나서서 러시아에 '대북제재 전선에서 이탈하지 말라'고 알린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도 타스 통신 등을 통해 비건 대표와 모르굴로프 차관의 통화 사실을 공개했다. 양국이 밝힌 통화 내용은 차이가 있다.
미국 국무부는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가 달성될 때까지 기존 제재의 완전한 이행과 집행을 유지할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러시아 외교부가 밝힌 주요 통화 의제는 “정치적 안정 증진”이다. 타스 통신은 러시아 외교부를 인용해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프로세스의 증진을 위해 안정에 관련된 모든 국가의 가능한 조치가 논의됐다”고 전했다.
즉 미국 국무부는 러시아가 북한 노동자 유입 등 대북 제재 국제 공조의 구멍을 키울 수 있는 조치를 하지 말라는 맥락의 요구를 했고, 러시아는 북한 비핵화 단계에 상응하는 체제 안전 보장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지난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결과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단독 기자회견에서 북한 노동자들의 러시아 파견 문제도 논의가 됐다고 인정하면서도 구체적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북한이 대북 제재로 외화 수급이 어려운 상황에서 러시아에 노동자를 계속 파견하는 문제를 협의했으리란 관측이 우세하다. 푸틴 대통령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체제 안전 보장을 위한 다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었다.
이번 비건 대표와 모르굴로프 차관의 통화에서도 미국과 러시아 양국의 온도차는 확연해졌다. 미국이 비건 대표의 전화 통화 카드까지 쓴 것은 그만큼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이 신경 쓰인다는 방증이다. 비건 대표는 손꼽히는 러시아통이다. 그는 미국 공화당 모스크바 지부에서 미ㆍ러 관계 개선과 함께 구소련의 경제개혁개방 조치를 연구하기도 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