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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북한 김영희칼럼

미사일 위기를 해결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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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데이비드 스트라우브는 2002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 국무부 한국과장과 일본과장을 차례로 지낸 사람이다. 그는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이 수립되고 진행되는 과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6월 워싱턴에서 한 강연내용을 보면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강행하기에 이른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스트라우브는 이렇게 말했다. (a)부시 정부는 출범할 때부터 북한에 대해 '모든 선택지(選擇肢)'를 가진다는 말로 무력행사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보여 북.미 관계뿐 아니라 한.미 관계까지 나빠졌다. (b)미국 정부가 지난해 9월 베이징 6자회담 공동성명을 독자적으로 해석해 북한의 반발을 불렀다. (c)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에게 북한과 직접 교섭을 하지 말라고 지시해 북한 문제가 정체에 빠졌다.

미국이 북한에 대해 가진다는 모든 선택지의 으뜸은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도 할 수 있다는 부시 독트린이다. 부시 이하 미국 관리들은 북한에 대한 공격은 없다고 강조하지만 북한은 미국의 북한정책 목표가 체제 붕괴나 정권 교체라는 의혹을 버릴 수가 없다. 미국 정부가 베이징 공동성명을 독자적으로 해석했다는 것은 성명발표 직후 힐 수석대표가 북한에 대한 경수로 제공은 북한이 핵시설을 완전히 해체한 뒤에 논의한다고 말한 것이다. 북한은 즉각 경수로 없는 핵 포기는 꿈도 꾸지 말라고 반발했다.

라이스 국무장관의 지시에 따라 미국의 협상대표들이 북한 대표들을 멀리한 것은 북한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냈다. 그리고 북한은 당연히 미국이 베이징 공동성명의 합의를 지킬 의사가 없다고 의심한다. 아닌 게 아니라 베이징 공동성명이 나온 뒤로는 힐 수석대표의 모습이 언론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 대신 강경파인 주한 미국대사가 자주 북한 문제에 언급하는 것이 눈에 띈다. 베이징 공동성명에 워싱턴의 강경파들이 반발한 결과로 보인다.

부시 독트린이 있어도 6자회담은 열렸고 베이징 공동성명이라는 합의가 성사됐다. 마찬가지로 적절한 수준의 북.미 대화만 있었으면 폭죽 쏘듯 하는 북한의 미사일 난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비확산담당 국무차관보를 지낸 마크 피츠패트릭이 지적한 대로 불량국가와 대화하면 그 불량국가에 정통성을 부여한다는 부시의 경직된 이념이 문제를 숙성시켰다.

피츠패트릭의 말대로 김정일은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과시로 비싼 미사일을 일곱 발이나 쏘았다. 부시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굴복할쏘냐라는 태도로 북한 압박을 강화할 것이다. 그러면 김정일은 다시 미사일을 쏘고, 어쩌면 공공연히 핵무기 개발에 나설 것이다. 북한의 일곱 번째 미사일 발사가 그걸 암시한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 세 가지의 심각한 결과가 예상된다. 하나는 한.미 관계가 극도로 나빠지고, 둘은 한반도의 위기가 고조되고, 셋은 동북아시아는 군비경쟁의 무대가 되는 것이다.

6자회담 밖이든 안이든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해야 이런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북한 스스로 6자회담에 나오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이 위조지폐와 인권으로 북한을 너무 궁지에 몰아 북한으로서는 6자회담 복귀의 명분이 필요한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노무현 정부가 '우리끼리 민족자주' 노선으로 미국을 설득할 지렛대를 상실했다는 사실이다.

노 대통령은 민족자주 발언으로 부시 대통령의 불신을 샀다. 노 대통령은 2004년 11월 로스앤젤레스에서 핵은 북한의 자위수단이라고 말했는데 다음해 2월 북한은 핵 보유를 선언했다. 노 대통령은 5월 몽골에서 북한에 무조건 더 많이 주겠다고 말했는데 북한은 그의 고마운 말씀에 미사일 난사로 '보답'했다. 그러니 북한에 관한 한국의 말이 미국에 통할 리 없다. 장관급 아래 수준의 관계만 겨우 유지되고 있다. 무엇을 할 것인가. 답은 나와 있다. 첫째가 한.미 관계 복원, 둘째가 한.일 관계 개선이다. 한.미 및 한.일 공조를 통해서 부시의 등을 북한 쪽으로 떠밀어야 한다. 9월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노 대통령은 고이즈미 일본 총리가 왜, 어떻게 죽은 엘비스 프레슬리까지 팔아서 부시의 마음을 사로잡았는가를 연구해야 한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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