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갈등의 뫼비우스’…지역감정 공방으로 막 오른 5ㆍ18 주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또다시 호남민들을 지역감정의 먹잇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14일 당 의원총회에서 “역사의 피해자인 광주시민들에게 두 번, 세 번 모욕과 상처를 남기는 행위를 멈추라”면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경고성 발언을 했다. 황 대표가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가 의사를 밝힌 데 대한 것이다. 이 대표는 “망언자들의 징계는 뒷전이고 황 대표가 광주를 다시 가겠다는 시커먼 속셈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또다시 호남민들을 지역감정의 먹잇감으로 삼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호남민들에 대한 포악한 공격이고 영남민들에 대한 모독이다”고 말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 [연합뉴스]

정의당 이정미 대표. [연합뉴스]

39주년을 맞는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의 기념주간의 막이 올랐다. 하지만 정치권엔 외려 불신의 언어가 횡행하고 있다. 범여권과 한국당이 진상규명, 모독 발언 처벌 등에서 다른 입장을 보이는 와중에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광주 방문이 갈등의 불을 댕기고 있다.

이날 광주에서는 황교안 대표의 기념식 참석과 함께 보수단체의 집회가 논란이 됐다. 5ㆍ18 39주기 행사위원회와 5ㆍ18 역사왜곡처벌광주운동본부는 이날 광주시 동구 5ㆍ18 민주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ㆍ18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자들은 거리를 활보하고 있으며, 국민 앞에 약속한 왜곡처벌법 제정은 정치권의 헛구호로 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황 대표는 망언 의원에 대한 확실한 퇴출, 법 제정에 대한 구체적 약속, 조건 없는 진상조사위 구성에 합의하지 않는 한 광주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17일과 18일에 일부 단체가 광주에서 맞불집회를 하겠다고 한 것과 관련, “이는 제사상을 걷어차겠다는 패륜적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즉각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대표의 광주 방문에 대한 비판은 갈등으로, 갈등은 다시 비판으로 ‘뫼비우스의 띠’처럼 이어지는 양상이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 12일 토크콘서트에서 “(황 대표가) 뭐하러 오겠어요. 얻어맞으려고 오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어 “황 대표가 광주에 오면 눈을 마주치지 말고, 말도 붙이지 않으며, 악수하지 않고 뒤로 돌아서라”라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황 대표는 “광주시민들을 모독하는 말”이라고 말했다. 한국당도 “유시민표 정치의 비루하고 슬픈 자화상이며 진영 논리 뒤에 숨어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2일 광주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12일 광주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유튜브 캡처]

민주당은 5ㆍ18 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서 활동한 한미 정보 요원들의 증언을 통해 진상규명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 육군 501정보단 요원이었던 김용장씨는 14일 광주광역시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광주항쟁은 신군부에서 만든 시나리오에 의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날 국회에서도 “전두환은 80년 5월 21일 점심 12시를 전후로 K57(광주 제1전투비행단, 광주비행장)에 왔다. 당시 헬기를 타고 왔으며 오자마자 K57 비행단장실에서 회의를 열었다”면서 “여기까지가 제가 보고한 내용이다. 하지만, 오후 1시 도청 앞에서 사살이 이뤄진 것을 감안하면 저는 전두환의 방문 목적은 바로 사살 명령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여영국 정의당 의원은 “전직 미군 정보요원 김용장씨의 증언은 전두환이 광주학살의 주범임을 확인해 주는 내용이다. 검찰은 1995년 전두환에 대해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당시 수사를 맡았던 장윤석 서울지검 공안1부장은 노무현 정부에서 사표를 내고,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17대에서 19대까지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고 말했다. 여 의원은 “한국당에 독재 후예의 DNA가 남아있다”는 주장도 했다.

지난 3일 오전 광주광역시 송정역 광장에서 광주 시민들이 황교안 한국당 대표에게 물을 뿌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오전 광주광역시 송정역 광장에서 광주 시민들이 황교안 한국당 대표에게 물을 뿌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에선 진상규명 특별법과 왜곡 처벌법 제정 등이 논의되고 있지만, 법 제정이 자칫 갈등을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국회는 여야의 대치로 여전히 공전중이다. 호남 출신의 한 의원은 “5·18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이 더 늘어나지 않도록, 실증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승현 기자 shyu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