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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불황의 격랑」 6년만에 "잠잠"해운산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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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해운 산업은 80년대 들어 크게 멍들었던 산업이다.
한때는 해외 건설과 더불어 부실의 대명사처럼 불려졌던 산업이고, 83년부터 87년에 걸쳐 요란한 소리를 내며 1,2차 해운산업 합리화 계획에 의해 1백15개 선사가 34개 선사로 통폐합되는 정리과정을 밟았다.
그 요란한 정리과정의 끝물쯤에서 터져 나온 범양상선 박건석 회장의 투신자살 사건과 이른바 비자금의 의혹은 지금도 많은 행운인들에게 돌이키기조차 싫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요즈음의 국내 해운업계는 업계 전체를 근 6년에 걸쳐 난파 직전까지 몰고 갔던 불황의 격낭이 비로소 잠잠해지고 이제 선단을 다시 정비, 새로운 항해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5백억 흑자 예상>
실제로 82년에 총 1천2백4억 원의 적자(세후 순익기준)를 내면서부터 이후 87년까지 연속 6년간 적자를 기록, 누적 적자가 무려 9천2백87억 원에 이르렀던 해운업계는 지난해 처음으로 비록 소폭이나마 4백53억 원의 흑자로 돌아섰다.
또 올해는 경영 상태가 다소 나아져 업계 전체로 5백58억 원의 흑자가 예상되기도 한다.
이 같은 경영 상태의 호전은 물론 6년간의 불황의 터널을 지나면서 1천2백7명의 인원을 줄이고 8백10 개소의 점포를 정리했으며, 2백만 t의 낡은 배를 처분하는 등 총 3천5백62억 원의 자구노력을 하는 등 고통을 감수한 데 힘입은 바 크다.
그러나 보다 더 큰 이유는 세계 해운시장의 큰 물결이 한바탕 치고 지나가면서 87년 4∼5월을 기점으로 상승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해운업은 그만큼 세계 해운시황의 물결을 숙명적으로 타게 되어있는 산업이다.
특히 원유·컨테이너·자동차·철광석 등을 실어 나르는 전용선들은 수요가 있을 때 임자를 정해놓고 만들어 띄우는 배들이므로 그다지 경기의 기복을 타지 않지만 석탄·쌀·콩 등 일반화물을 실어 나르는 벌크선들은 운임이나 배 값·물동량 등에 심한 부심을 겪게 마련이다.
쓰라린 기억이지만 지난 77∼80년 정부가 해운 진흥법까지 만들어 가며 해운입국의 깃발을 내걸고 선복량을 늘리기 위한 정책을 밀어 불였을 때 너도나도 사들였던 것이 대부분 중고 벌크선들이었고, 선가가 한창 오를 무렵인 그 즈음에는 마치 부동산 투기를 하듯 은행융자나 차관도입 승인을 받아 배를 한 척 사서 띄우면 1주일 후 배 값이 두 배로 뛰는 경우까지도 있었다.
그러나 81년부터 세계 해운시황이 한번 기울기 시작하자 국내 업계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렸다.
72년 1백이던 해운 운임지수가 80년 4백 수준까지 올랐다가 86년 8월에는 1백40으로까지 떨어져버렸으니 부심이 얼마나 심한지를 알 수 있고 그 와중에서 은행들이 담보로 잡고 있던 배 값도 폭락해 순식간에 부실대출의 계수를 기하학적으르 늘려놓았으며 은행 도산을 막기 위해서는 도리 없이 대규모 해운 합리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한진해운에 통합된 대한선주, 아직도 외환은행의 관리상태에 있는 범양상선 등이 바로 대표적인 벌크선 위주의 선사였고, 두양상선도 벌크선이 많아 합리화조치 이전에는 정리 대상으로 거론되었었으나 87년부터 세계 해운 시황이 호전되면서 배 값이 다시 올라 이제는 거꾸로 가장 덕을 많이 본 선사가 됐다.
이 중 범양상선은 아직도 부실의 상처가 다 치료되지 않은 채 어떠한 형태로든 정리방안을 강구해야만 할 상태다.

<합리화 조치 강구>
범양은 87년까지도 4백23억 원의 적자를 보았었으나 지난해에는 처음으로 1백51억 원의 당기 순이익을 냈다.
그러나 지난해 말 현재 범양의 자기 자본 잠식은 무려 1천8백23억 원에 이르고 있고 언제 또다시 해운불황이 몰아칠지 모르는 상태에서 지금과 같은 은행관리 상태를 무한정 끌고 갈 수가 없는 것이다.
현재 재무부와 외환은행·서울 신탁은행 등은 해운산업의「숙제」처럼 이월되고 있는 범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묘책을 찾고 있으나 쉽게 해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범양이라는 큰 숙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앞서 이야기한 대로 나머지 대형 선사들은 세계 해운시황의 회복물결을 타고 착실한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기업공개 잇따라>
70년 79만8천t, 80년 5백17만5천t이던 선복량은 지난해 8백30만6천 t으로 늘어났고, 최근 현대 상선과 대한 해운이 기업 공개를 준비하고 있는 등 자본 축적에 따른 경영개선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와 함께 국내 해운업계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점진적인 해운업의 개방이 추진되면서 미 시랜드 사가 이미 6월초 한국지사를 설치했고 뒤따라 미 APL사도 한국지사 설치를 신청해놓고 있는 등 개방의 물결이 닥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해운업의 국제 경쟁력을 하루 빨리 갖춰 나가기 위해 업계와 정부가 추진해야 할 과제는 한두 가지가아니다.
그 중에서도 결코 하루아침에 될 일은 아니지만 현재 정부의 허가제로 되어있는 선박 취득·매각의 자율화, 해운업 면허의 개방 등이 언젠가는 이루어져야 할 중심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와 함께 아직도 극히 영세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내항선사들의 기업화, 운임의 정부인가제의 개선 등도 시급한 과제이며, 국내·해외 관광항로 등의 개발도 적극 추진되어야만 한다는 지적이다. <김수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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