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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단, 경기 끝나자 피구부터 찾아 "네 땀에 젖은 옷을 입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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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단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두 손을 치켜들었고, 포르투갈의 루이스 피구(34)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영웅들의 마지막 전쟁에서 지단이 최후의 승자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프랑스와 포르투갈의 독일 월드컵 준결승전이 열린 6일 오전(한국시간) 뮌헨 월드컵경기장.

프랑스의 지단(右)과 포르투갈의 피구가 준결승전이 끝난 뒤 유니폼을 바꿔 입으며 위로와 축하를 나누고 있다. 두 노장 선수는 지난 시즌까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에서 함께 뛴 동료였다. [뮌헨 AFP=연합뉴스]


지단과 피구의 대결에는 탁월함 뒤에 치열함이 묻어 있었다. 팽팽하게 수비 위주로 전개된 이날 경기에서 이들의 활약만이 눈에 띄었다. 전반 9분 피구가 프랑스 수비수 아비달을 제치고 위협적인 오른발 크로스를 올리자 4분 후 지단이 헛다리짚기로 포르투갈 진영을 뚫고 왼발 크로스로 응수했다. 전반 15분 중앙으로 파고들던 피구가 왼발 터닝슛을 시도하다 수비수와 충돌하며 필드에 쓰러졌다.

전반 26분 지단은 상대 파울을 유도하기 위해 시뮬레이션 액션도 서슴지 않았다. 전반 33분 앙리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지단이 침착하게 차넣었다. 자신의 107번째 A매치에서 이끌어낸 30번째 골이었다.

피구의 반격은 안타까울 정도로 치열했다. 후반 32분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날카로운 프리킥을 프랑스 골키퍼 바르테즈가 두 손으로 쳐냈다. 순간 피구가 공중으로 떠올라 회심의 헤딩슛을 시도했다. 슛은 크로스바를 살짝 넘어갔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피구의 얼굴은 자책감과 안타까움에 휩싸여 있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지단은 누구보다 먼저 피구를 찾았다. 두 선수는 짙은 포옹을 나눴다. 지단이 피구의 어깨를 다독이며 자신의 땀이 밴 유니폼을 벗어 건넸다. 피구 역시 축하의 인사를 건네며 유니폼을 벗어줬다. 피구의 자주색 유니폼을 소중히 입은 지단은 그제야 동료와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은퇴를 번복하고 배수진을 쳤던 독일 월드컵. 그러나 6년 전 유로 2000 준결승 때와 똑같이 지단의 페널티킥에 주저앉은 피구는 한동안 그라운드를 떠나지 못했다. 동료와 코칭스태프가 그를 위로했다.

34세 동갑으로 생애 마지막 월드컵에서 맞대결을 펼친 지단과 피구. 지단은 8년 만에 다시 월드컵 결승 무대를 밟게 됐고, 생애 첫 월드컵 결승행을 바랐던 피구는 아쉬운 발길을 돌려야 했다.

뮌헨=최원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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