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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캉에 찍혀도 "선처"···부모 탄원에 형량 줄어든 자식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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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해 10월 서울 중랑구에 사는 A씨는 74세의 모친에게서 “술을 많이 마시지 말아라”라는 말을 듣자 격분해 강아지용 털 깎는 기계인 일명 ‘바리캉’으로 어머니의 왼쪽 팔을 찍었다. A씨는 알코올중독증 환자였다. 존속상해 혐의로 기소된 A씨는 일반적 상해 혐의보다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았다.

가중처벌 대상이지만 감경 많아 #위증죄로 벌금형 받은 부모도 #“감싸면 반복, 치료 명령 등 필요”

하지만 모친은 “아들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아들은 처벌보다 치료가 필요하다”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피해자인 모친의 ‘처벌불원’ 의사가 반영돼 A씨에겐 결국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다.

지난해 8월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서울 강북구에 거주하는 B씨는 79세의 부친 옆구리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둔부를 찼다. 물건을 얼굴에 집어던져 부친의 얼굴에 상처를 입히기까지 했다. A씨와 달리 B씨는 동종 전과도 여러 차례 저질렀던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B씨의 아버지는 아들의 선처를 재판부에 부탁했다. 1심 재판을 담당한 서울북부지법 박태안 판사는 “아버지를 폭행한 패륜적인 범죄로 죄질이 무겁다”면서도 “피해자가 피고인의 선처를 탄원하고 있고 피고인이 깊이 반성하고 있는 점을 고려했다”며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015년엔 자신을 폭행한 아들을 위해 법정에서 거짓 증언을 하다 위증죄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어머니도 있었다.

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존속 범죄는 점차 증가 추세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 수는 62명으로 2017년(39명)보다 59% 증가했다. 범행 동기로는 가해자의 정신 이상이나 피해자의 학대, 음주 등이 꼽혔다. 형법 제250조 2항 존속살해죄는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일반 살인죄의 최소 형량(5년)보다 높다. 패륜 범죄를 엄단하기 위해 존속 폭행·상해 등의 범죄는 일반 범죄보다 형을 2분의 1 정도 가중한다.

하지만 존속범죄는 ‘피해자의 탄원’으로 선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가중처벌을 해야 하지만 피해자인 부모들이 오히려 피고인을 처벌하지 말아 줄 것을 호소한다”며 “부모 때문에 일반적인 형량보다 감형하거나 선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신진희 변호사는 “존속 폭행은 ‘반의사 불벌죄’라 부모가 처벌을 원하지 않으면 처벌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며 “한국 사회 특성상 ‘부모가 잘못 가르쳤다’고 여기기 때문에 피해자 스스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신 변호사는 “이 때문에 존속폭행이 반복될 수밖에 없고, 피해자의 ‘괜찮다’는 말 때문에 수사기관 등이 개입하지 못해 살인 등 대형 사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법무법인 에이스의 정태원 변호사도 “반의사 불벌죄가 아닌 존속상해의 경우도 처벌하려면 진단서를 내는 등 혐의를 입증해야 하는데 부모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존속범죄를 근절하기 위한 ‘사회적 치료’를 강조했다. 신 변호사는 “유년기부터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지만 존속폭행 범죄자들에게도 성폭력이나 아동학대 범죄와 마찬가지로 적절한 치료 명령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후연·편광현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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