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청원 원조 오바마 ‘위더피플’…행정부 권한 밖 이슈는 청원 제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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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정당 해산을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36만명을 넘기며 기록을 세웠다. 청와대 청원의 모태는 2011년 미국 오바마 행정부가 만든 백악관 청원 게시판 ‘위더피플(We the people)’. 30일간 10만명 이상이 동의하면 공식 답변 대상이 된다. 인구 등을 고려할 때, 청와대 청원(30일 내 20만명)보다 문턱이 낮은 셈이다. 단, 위더피플에는 무분별한 청원을 방지하는 방지턱이 있다.

법원·지방정부 관할 사항이나 #선출직 후보자 지지·반대 청원엔 #“답변 안할 수 있다” 게시판에 명시

위더피플은 청원 첫 단계에서 ▶특정 이슈에 대한 행정부의 입장 발표 촉구 ▶행정 제도 변경 제안 ▶새로운 행정 제도 제안 등으로 행정부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만 청원을 받는 점을 명시했다. 그 외 이슈는 ‘국회에 호소(call on congress)’로 분류한다. 삼권분립 정신에 어긋나는 청원을 걸러내는 필터다. 위더피플은 또 “지방정부나 연방법원 관할 사안, 선출직 후보자의 지지 또는 반대를 명시적으로 촉구하는 청원, 연방 정부의 정책과 무관한 청원 등에는 답변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청와대도 최근 유사한 답변 가이드라인을 내놨다. 진행 중인 재판에 관련됐거나, 입법·사법부의 고유 권한 관련 청원, 지방자치의 고유 업무에 해당하는 청원 등은 삼가라는 게 골자다. 또 청원 등록 전 100명의  동의를 받도록 했는데, 150명 이상 사전 동의를 얻은 청원만 공개하는 위더피플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한편 근대 민주주의의 종주국으로 불리는 영국의 국민청원제도에는 행정부와 입법부가 모두 참여한다. 1만명 이상 지지를 받은 청원은 정부의 서면 답변을 받게 되고, 10만명이 넘은 청원은 국회 토론 안건으로 상정되는 식이다. 행정부와 입법부가 융합된 영국 내각제의 특성을 청원제도에 반영한 것이다. 청원 게시판에는 의회의 토론 영상과 스크립트가 올라온다.

영국에서는 유럽연합(EU) 잔류를 촉구하는 청원이 압도적 추천(600만)을 받았고, 극단주의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 일원이 된 영국인의 재입국 금지(60만) 등이 그 뒤를 이었다. 미국에선 대통령 자산의 백지 신탁(36만), 뉴욕주 낙태 허용 기간 축소(30만), 총기규제법 폐지(30만) 등이 최다 추천을 받았다. 황당한 청원도 있다. 2013년 영화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행성 파괴용 무기 ‘데스스타’를 만들어 달라는 청원이 답변 요건(당시 기준 한달 내 2만5000 건 추천)을 넘기자, 백악관은 “데스스타 제작엔 8500조 달러가 든다. 우리는 재정적자를 줄이려고 노력 중이며 행성 파괴에 반대한다”고 유머스럽게 답변하기도 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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