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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전쟁 끝? 바로 훈풍 기대하기 어려운 4가지 이유

중앙일보

입력

미·중 무역협상이 막바지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기대감에 실려 중국 경제가 꿈틀거리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6.4%로 잠정 집계됐다. 중국의 분기별 경제성장률은 미중 무역전쟁이 발발한 작년 1분기 6.8%, 2분기 6.7%, 3분기 6.5%, 4분기 6.4%로 꾸준히 내려갔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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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집계된 지난해 성장률은 6.5%. 올해 1분기 6.4%에서 저지선을 잡았다는 점에서 중국 경제의 하락 추세는 일단 진정세를 보인 것 같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베이징과 상하이의 이코노미스트나 기업 고위 관계자들은 중국 경제 전망에 대해 낙관론이 퍼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칼럼니스트 마틴 울프의 전언이다. “골드만삭스와 많은 관찰자들이 공감대를 이루는 게 있다. 중국 경제가 지난해말 하강국면에서 빠져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마틴 울프는 최근 베이징과 상하이 출장을 다녀온 뒤 관련 칼럼을 잇따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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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 운용회사인 펄크럼애셋매니지먼트(FulcrumAsset Management)가 월간 ‘나우캐스트(nowcasts, 뉴욕연방준비은행의 GDP 산출 모델)’ 수치를 집계한 결과 지난해 12월 중국의 경제 성장률은 4%까지 떨어졌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게 방아쇠가 됐다. 글로벌 경제 특히 교역과 제조업 분야의 경기 침체를 심화시켰다는 게 펄크럼 가빈 데이비스의 판단이다.

경기침체의 이면에선 지난 10년간 이어진 신용 확대 흐름에 제동을 거는 부채 축소 정책이 작용했다. 미국과의 무역전쟁을 하면서 중국의 자신감도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 그런데 상황이 이제 호전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근 상하이를 다녀온 마틴 울프의 얘기를 들어보자.

“만나는 사람들마다 낙관적 기대감을 표해서 놀랐다. 펄크럼의 지표도 중국 정부의 예상 목표치 6~6.5%와 부합한다. 골드만삭스도 5.8%까지 성장률을 높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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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증시의 벤치마크인 상하이종합지수는 지난해 무역전쟁의 직격탄을 맞아 24% 넘게 폭락했다. 공포는 오래 가지 않았다. 올해 들어서만 다시 30%가량 폭등하면서 낙폭을 완전히 줄여놓은 상태다. 대규모 외자 유출 우려 속에서 달러당 7위안대를 위협하던 위안화 환율도 최근에는 달러당 6.7위안 초반대에서 형성되면서 비교적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낙관론의 귀환에는 이유가 있다. 

미국과 무역협상이 곧 타결될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또 하나는 감세 등 정부의 거시 완화정책이다. 리커창 총리가 지난 전인대에서 밝힌 금리인하 발언도 시장의 기대감을 높였다.

리 총리는 당시 “기업의 차입 비용을 줄이고 자금조달의 어려움을 완화시키기 위해 지급준비율과 기준금리 등 통화수단을 적절히 운용해 신용대출의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마틴 울프를 놀라게 한 게 하나 더 있다. 

중국 경제인들 사이에서 민영 사이드에 대한 각종 규제 완화와 지원책을 당중앙에서 공식적으로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몇몇 경제인들은 무역협상을 통해 미국이 중국 경제의 자유화를 압박하는 현실에서 희망을 피력했다고 한다. 중국 정부가 외자기업에 대해 규제를 푸는 등 중국에 진출한 해외기업에 대해 더 잘 할수록 중국의 민영기업에도 똑같이 그 혜택이 돌아온다는 논리다.

“미국의 협상가들이 (외자기업에 대한 비공식적 규제와 단속을 중단시키는 조치가) 중국 민영사이드에 미치는 영향까지 이해하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울프의 진단이다.

4가지 이유를 들어 중국 경제에 대한 낙관론은 어설프다고 주장한다. 

첫째, 무역협상이 제대로 타결될지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설사 타결이 임박했다해도 미국 측에서 협정 이행을 강제하는 장치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약속을 어길 경우 스냅백(관세 부과)조항을 넣어 징벌적 관세 부과 등 제재를 하자는 것이니 중국으로선 영 껄끄러운 조건이 아닐 수 없다. 천신만고 끝에 타결된다해도 무역전쟁은 근본적으로 끝났다라기보단 상설적인 현상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게 울프의 시각이다.

즉, 예전처럼 시장을 무기로 미국을 비롯한 해외기업에게
①합작사 설립을 강요하고
②일정 비율 이상 중국 현지에서 제작한 부품 사용을 강제하거나
③지식재산권을 침탈하고
④보조금을 지급해 자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등의 불공정 행위를 중국이 하고 싶은 대로 하던 시절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둘째, 신용과 부채 증가를 통제하는 게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부채를 일으켜 투입에 의존한 중국 경제의 성장 방정식이 중국 경제에선 상식처럼 굳어져 정책 당국이 왠만해선 부채 축소 등 통화 유동성을 줄이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운용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중국의 기업·지방정부의 부채는 지난 10년간 급팽창했지만 1~2년 반짝 디레버리징 정책을 추진하다 이내 부양책으로 돌아서곤 하는 중국 정책 당국의 고질적 관행을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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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민영 사이드 지원에 대한 당국의 의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시진핑 주석을 둘러싼 경제라인은 민영기업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평가를 하고 있지만 시진핑 자신은 국영 사이드에 대한 경로 의존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울프의 진단이다. 이는 중국공산당의 수족이라는 국영 기업의 위상과 기능 때문인데 여기서 자원배분 권한을 시장보다는 국가가 쥐고 있어야 한다는 시진핑의 경제관을 엿볼 수 있다.

넷째, 중국 경제의 규모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다. 성장 속도가 중국 당국의 공식 발표보다 더 느리다는 게 서구의 시각이다. 관건은 침체에 빠진 경제가 저점을 지났느냐는 것이다. 이게 지속가능한 것이냐는 것인데 여기에 대해선 대부분의 관찰자들의 판단은 아마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 경제의 한계가 근본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한 리스크는 늘 문전에 있다는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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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년간 초스피드로 고도 성장한 중국 경제는 초유의 미중 무역전쟁이라는 암초를 만나 자칫 난파될 수도 있다는 공포 구간을 맛봤다. 이제 그 터널의 출구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희망이 시장 전반에 퍼지면서 경제 전반에 훈풍의 기류가 흐르고 있다.

이번 무역전쟁은 역설적으로 관세만으로도 소비와 투자 심리가 얼어붙어 중국 경제가 잔뜩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을 실증했다. 중국 경제의 앞에는 거의 전 부문에 걸친 생산력 과잉과 폭발적으로 늘어난 국유기업·지방정부의 부채라는 큰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무역전쟁 전에도 해결 못한 문제인데 이제는 더욱 평평해진 운동장에서 싸워가며 거품을 해소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중국 경제에 대한 낙관이 쉽지 않은 이유다.

정용환 기자 narrativ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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