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에너지 메이저 될 것" 서산 선언 11일 만에 LG화학 SK이노 제소

중앙일보

입력

지난 19일 SK이노베이션 서산공장에서 배터리 셀을 든 최태원 회장(가운데)이 김진영 배터리생산기술본부장(오른쪽)으로부터 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맨 왼쪽은 윤예선 배터리 사업 대표. [사진 SK이노베이션]

지난 19일 SK이노베이션 서산공장에서 배터리 셀을 든 최태원 회장(가운데)이 김진영 배터리생산기술본부장(오른쪽)으로부터 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맨 왼쪽은 윤예선 배터리 사업 대표. [사진 SK이노베이션]

“일부 경쟁사들이 공격적인 가격으로 경쟁을 벌이고 있다. LG화학은 수익성이 전제되지 않은 경쟁은 하지 않는다는 기조를 유지한다.”

저가 수주 지적 이어 기술 탈취 제소 #LG화학 "배터리 핵심 76명 빼갔다" #SK이노 "정당한 기업 영업활동”

정호영 LG화학 사장은 지난 24일 이렇게 말했다. 이날 열린 LG화학 1분기 실적 발표 행사장에서다. 정 사장은 이어 “고객사들은 LG화학의 전기차 배터리 가격이 경쟁사보다 높다고 느끼고 있겠지만, 대규모 프로젝트를 LG화학에 주고 있다”며 “저가 공세가 아닌 제품 성능과 안전성 등이 수주 결정에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은 이날 저가 수주 경쟁사 기업명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SK이노베이션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는 게 업계 정설이다.

LG화학이 "핵심 기술을 훔쳐갔다"며  SK이노베이션을 미국에서 제소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 신경전이 꼭짓점을 찍었다는 분석이다. LG화학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SK이노베이션에 대한 제소 내용을 구체적으로 공개했다. LG화학은 "전지사업본부의 연구개발, 생산, 품질관리, 구매, 영업 등 전 분야에서 76명의 핵심인력을 대거 빼갔다"며 "이 가운데는 LG화학이 특정 자동차 업체와 진행하고 있는 차세대 전기차 프로젝트에 참여한 핵심인력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SK이노베이션이 핵심기술 유출 우려가 있는 LG화학의 핵심인력을 대상으로 추가적인 채용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생산량 기준으로 LG화학・삼성SDI・SK이노베이션 순이다. 상대적으로 시장 진출이 늦은 SK이노베이션은 독일 폴크스바겐과 중국에 합작사 설립을 검토하는 등 공격적으로 몸집을 키워가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미국 조지아주 잭슨 카운티커머스시에서 전기차 배터리 생산공장 기공식을 열었다. SK이노베이션은 2022년까지 미국 공장 신설에 1조9000억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독일 폴크스바겐과 중국에 전기차 배터리 합작사 설립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LG화학은 자동차 제작사와의 배터리 합작사 설립에 "신중히 해야 한다"는 입장을 꾸준히 내놨다. 김형식 LG화학 상무는 1분기 실적발표 행사를 통해 "합작사 설립은 안정적인 거래처 확보라는 장점도 있지만, 핵심 기술유출 리스크가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번 제소로 배터리 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집중적으로 육성하려던 SK그룹은 멋쩍게 됐다. SK그룹에선 최태원 회장도 나서 배터리 산업 확대에 힘을 실어줬다. 지난 19일 최 회장이 서산 배터리 공장을 방문한 게 대표적이다. 그는 이날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으로 새로운 의미의 에너지 산업에서 글로벌 메이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 내부에서 서산 공장이 갖는 의미는 크다. SK이노베이션이 만든 국내 최초 배터리 생산 공장이자 배터리 사업의 모태로 불기 때문이다. 서산 공장은 지난해 하반기 제2 공장을 완공하며 총 4.7GWh 생산능력을 갖춰 SK이노베이션의 국내 배터리 생산 거점 역할을 맡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의 제소에 "기업의 정당한 영업활동에 대한 불필요한 문제 제기를 했다"며 "국내 이슈를 외국에서 제기함에 따른 국익 훼손 우려 등의 관점에서 유감을 표한다"고 주장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