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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 "SK이노, 이력서에 핵심기술·동료이름 다쓰라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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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LG화학은 사업구조 고도화 및 R&D 강화를 통해 2025년까지 ‘글로벌 톱 5 화학회사’ 로 진입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오창 전기차배터리 생산라인 모습. [사진 LG화학]

LG화학은 사업구조 고도화 및 R&D 강화를 통해 2025년까지 ‘글로벌 톱 5 화학회사’ 로 진입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오창 전기차배터리 생산라인 모습. [사진 LG화학]

국내 전기차용 배터리 기업 두 곳이 법정에서 맞붙게 됐다. LG화학이 자동차 배터리 핵심기술을 빼간 의혹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을 제소했다. SK이노베이션은 "상황을 파악 중"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LG화학은 29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SK이노베이션을 ‘영업비밀(Trade Secrets) 침해’로 제소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의 전지사업 미국 법인이 있는 델라웨어주 지방법원에는 영업비밀침해금지 및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LG화학이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두 가지로 분석된다. ITC와 법원의 증거개시 절차(Discovery)와 징벌적 손해배상 때문이다. 증거개시 절차는 정식 변론에 돌입하기 전 소송 당사자가 정보나 자료를 제출·공개하는 법적 의무를 말한다. 증거 은폐가 어렵고 이를 위반하면 소송결과에도 영향이 미친다. 한국에서도 문서제출 명령이 받아들여지면 증거를 제출해야 하지만 미국의 증거개시 절차가 훨씬 강력하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또 다른 하나는 한국 법원과 비교해 무거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다.

법무법인 대륙아주의 임성훈 선임외국변호사는 "손해배상액 산정을 배심원이 하는 미국 법원 특성상 액수가 한국과 비교해 막대하다"며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민사에까지 적용되기 때문에 미국에서 소를 제기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핵심인력을 대거 빼가는 과정에서 핵심기술까지 훔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배터리 사업에 힘을 쏟기 시작한 2017년부터 LG화학 전지사업본부의 연구개발· 생산·품질관리·구매·영업 등 전 분야에서 핵심인력 76명을 빼갔고, 이 가운데 LG화학이 특정 자동차 업체와 진행하고 있는 차세대 전기차 프로젝트에 참여한 핵심인력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는 주장이다.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이 여전히 핵심인력을 대상으로 추가 채용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입사서류를 통한 LG화학의 핵심기술 유출 사례. [사진 LG화학]

입사서류를 통한 LG화학의 핵심기술 유출 사례. [사진 LG화학]

입사서류를 통한 LG화학의 핵심기술 유출 사례. [사진 LG화학]

입사서류를 통한 LG화학의 핵심기술 유출 사례. [사진 LG화학]

LG화학은 SK이노베이션으로 전직한 이들의 입사지원 서류에 배터리 양산 기술과 핵심 공정기술 관련 주요 영업비밀이 매우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담겨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LG화학에서 수행한 상세한 업무 내역이나 프로젝트 리더와 프로젝트를 함께한 동료 전원의 실명 등이 기술돼 있었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직원 A의 SK이노베이션 입사지원 서류에는 전극 제조 공정 관련 프로젝트 내용이 당시 상황과 배경, 목적, 프로젝트 결과물인 개선 방안과 성과 등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LG화학은 이같은 기술유출 과정에서 SK이노베이션 입사지원 인원들이 집단적으로 LG화학의 회사 시스템에서 개인당 400~1900여건의 핵심기술 관련 문서를 다운로드 한 것으로 확인됐다.

LG화학은 이같은 기술 빼돌리기로 SK이노베이션이 선두업체 수준의 자동차용 배터리 개발에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대폭 절약하고, 이를 바탕으로 최근 미국을 포함한 주요 고객사들로부터 글로벌 프로젝트를 수주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LG화학 핵심 인력을 대거 빼내 가기 전인 2016년 말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수주 잔고는 30GWh에 불과했지만 올해 1분기에는 430GWh로 14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LG화학은 올해 초 대법원에서 2017년 당시 SK이노베이션으로 전직한 핵심 직원 5명을 대상으로 제기한 전직금지가처분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재판부는 영업비밀 유출 우려, 양사 간 기술 역량의 격차 등을 모두 인정해 지난해 이례적으로 장기간에 해당하는 ‘2년 전직금지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LG화학의 승소를 최종 확정했다.

신학철 LG화학 CEO는 “이번 소송은 핵심기술과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며 "정당한 경쟁을 통한 건전한 산업 생태계 발전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아직 결정된 입장이 없다"며 "상황이 파악되는 대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LG화학은 이번 수입금지요청에 대해 ITC가 5월 중 조사를 시작하면 내년 상반기에는 예비판결을, 하반기에 최종판결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오원석 기자 oh.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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