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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제약 vs 메디톡스 6차전, 끝 안 보이는 ‘나보타 분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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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3호 18면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제품인 나보타가 이르면 5월에 ‘주보(Jeuveau)’라는 이름으로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팔릴 예정이다. 나보타는 지난 2월 1일 미국 식품의약처(FDA)의 판매 허가 승인을 획득했다. 국내 기업의 보툴리눔 톡신 제품으로 FDA 승인을 받은 첫 사례다. 미국 엘러간의 보톡스에 대적할 제품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2016년부터 네 차례 민·형사 소송 #메디톡스 “우리 제품 균주 훔쳤다” #대웅 “포자 감정 나오면 결백 입증” #미국에도 ‘지재권’ 청원·제소 #대웅, FDA 판매 승인에 한숨 돌려 #메디톡스, 미 국제무역위원회 제소

호사다마일까. 큰 수익을 기대하고 있는 대웅제약 앞에 걸림돌이 있다. 메디톡스·엘러간이 지난 1월에 대웅제약·에볼루스의 지적재산 침해 혐의에 대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제소해 조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미국 엘러간은 메디톡스의 이노톡신 기술 수입사이고, 미국 에볼루스는 대웅제약의 나보타 판매사다. ITC는 관세법 337항에 따라 보툴리눔 톡신 제품의 동일 여부와 제조·공정 등에 대한 과정을 조사한다고 밝혔다. 미국 관세법 337조는 미국 내 상품 판매와 수입 관련 불공정행위에 대한 단속을 규정한다. 당장 나보타의 수출길이 막히는 것은 아니지만 ITC의 조사 결과에 따라 대웅제약과 메디톡스의 희비가 엇갈릴 수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국내 보툴리눔 톡신 업계 1위인 메디톡스는 나보타 출시 당시부터 대웅제약이 자사의 균주를 훔쳤다고 주장하고 있다. 메디톡스는 미국과 한국에서 형사·민사소송을 제기하는 등 대웅제약의 나보타 균주 획득 과정을 파고들고 있다.

메디톡스는 나보타의 미국 수출 임상 3상이 마무리된 2016년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이사는 당시 기자회견을 열고 대웅제약 등에 “보툴리눔 균주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공개하자”고 요구했다. 당시까지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메디톡스 측은 대웅제약이 자신들의 균주를 훔쳤다고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이어 메디톡스 퇴직자 2명과 대웅제약을 대상으로 경찰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2017년 5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판결이 났다. 이후 메디톡스는 또 다른 자사 퇴직자 3명과 대웅제약을 상대로 고소했다. 피고소인에 대한 조사는 모두 진행됐지만, 증거 확보가 어려워 2년 넘게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민사소송도 시작했다. 메디톡스는 나보타의 대미 수출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2017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오렌지카운티 법원은 메디톡스의 소송 제기가 부적합하다고 판결했다. 그러자 메디톡스는 같은 해 10월 한국에서 다시 민사소송을 제기해 지금까지 재판이 진행 중이다.

소송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방이 오갔다. 메디톡스는 나보타의 미국 판매 허가 승인을 저지하기 위해 2017년 12월 FDA에 시민청원을 통해 나보타 균주 출처를 확인하기 전까지 승인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FDA는 그러나 이를 받아들이지지 않았고, 지난 2월 대웅제약에 승인을 내줬다.

대웅제약은 메디톡스와 엘러간의 ITC 제소도 나보타의 미국 시장 진출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본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FDA 승인 과정에서 메디톡스가 청원했지만 결국 반려된 것을 고려할 때 ITC 조사에서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메디톡스는 ITC 제소가 FDA 청원과 의미가 전혀 다르다는 입장이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판매되는 약품의 자격을 평가하는 FDA의 심사와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ITC의 심사는 관점이나 조사하는 방식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딴판인 결과가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ITC의 조사는 통상 15~18개월 정도가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기술 도용 여부는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진행 중인 민사소송이 ITC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진행 중인 민사소송 결과는 조만간 윤곽이 나올 전망이다. 대웅제약과 메디톡스는 ‘균주 포자 감정’으로 진위를 밝히기로 합의했다. 포자 감정법은 균주가 포자를 형성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메디톡스 측은 ‘보툴리눔 톡신 균주가 포자를 생성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상태에서 발견될 수 없다’는 이유로 나보타의 균주 출처를 의심하고 있다. 나보타의 균주가 포자를 생성한다면 대웅제약 측의 결백이 밝혀진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5월 1일 변론기일 이후 구체적인 포자 감정 일정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며 “5월 말쯤이면 포자 감정을 마치고 결백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제약 업계에선 나보타를 둘러싼 공방전이 ‘인보사 사태’로 나빠진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의 이미지를 더욱 훼손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더구나 대웅제약과 메디톡스의 다툼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엘러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보툴리눔 톡신

박테리아가 만들어내는 신경 독성 물질로 사람에게 매우 치명적인 맹독이다. 하지만 미량을 적절히 사용하면 여러 질병의 치료제로 쓸 수 있다. 근육질환 치료, 주름살 제거 등 미용 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 엘러간의 ‘보톡스’가 보툴리눔 톡신을 이용한 대표적인 제품이다.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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