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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로 다시 계산해오라" 대법의 '정년 60세' 퇴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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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육체 노동자가 일할 수 있는 나이를 ‘65세’로 못박는 대법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앞서 2월 2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육체 노동 가동연한을 60세에서 65세로 올리라고 한 데 따른 후속 판결들이다.

“차에 치인 30대, 65세까지 일하면 3억보다 많이 벌 것”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25일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모 배모씨 등이 가해 차량의 보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유족에 약 3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한 원심 판결을 깨고 배상액을 다시 산정하라며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나는 몇살까지 일할 수 있을까. 대법원은 이를 '65세'로 보고 있다. [사진 photoAC]

나는 몇살까지 일할 수 있을까. 대법원은 이를 '65세'로 보고 있다. [사진 photoAC]

30대였던 배씨의 아들은 지난 2014년 2월 운전 중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도로를 달리던 중 차가 눈길에 미끄러진 게 화근이었다. 그는 잠시 정차한 뒤 뒤따라오던 차량들에게 수신호를 보냈지만 한 차량이 이를 보지 못하고 들이받았다. 배씨 등 가족은 가해차량의 보험사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ㆍ2심은 제한속도를 어긴 가해 차량 측에 60% 책임을 인정했다. 통상 이 경우 손해배상액은 사망자가 정년까지 계속 일했다면 얻었을 소득인 ‘일실수입’을 토대로 산정한다. 1ㆍ2심은 기존 판례에 따라 정년을 60세로 보고 배상액을 계산했다. 1심은 총 3억원 가량을 배상하라고 했고, 2심은 배씨 아들이 국가유공자였던 점을 반영해 2000만원 가량을 추가 배상하도록 했다. 대법원은 지난 2월 전원합의체 판결을 들며 노동 가동연한을 65세로 올려서 배상액을 다시 계산하라고 했다.

차 부품에 맞은 50대도…“은퇴 65세로 계산해 배상”

대법원1부는 차량 정비기사 실수로 상해를 입은 덤프트럭 운전 기사인 이모(55)씨 사건에서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이씨는 2015년 11월 한 자동차 정비업소에 차 수리를 맡겼다가 사고를 당했다. 수리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던 중 부품이 얼굴로 튀었고, 눈가에 치료일수 미상의 상처를 입었다. 이런 안전사고 위험 때문에 작업장에는 일반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있었다.

이 일로 정비기사는 안전관리 의무를 소홀히 한 혐의(업무상과실치상)로 기소돼 집행유예 2년의 형사처벌을 받았다. 이씨는 그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냈다. 1ㆍ2심은 정비기사 과실을 60%로 인정하고 이씨의 가동연한을 60세로 계산해 51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했지만 대법원은 ”65세 기준으로 배상액을 다시 계산하라“며 사건을 수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앞으로 65세 인정 판결 쏟아질 것”

지난 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수영장 아동 익사 사건'을 판결할 당시 모습. [연합뉴스]

지난 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수영장 아동 익사 사건'을 판결할 당시 모습. [연합뉴스]

 육체노동 가동연한을 65세로 끌어올린 계기는 ‘4세 아동 수영장 익사 사건’이다. 지난 2015년 수영장에서 4세 아들을 잃은 박모(45)씨는 제때 조치를 취하지 못한 수영장 운영업체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ㆍ2심은 아들이 살아있었다면 60세까지 수입이 있을 것으로 계산해 “박씨에게 1억 20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하지만 지난 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65세를 기준으로 배상액을 다시 계산하라는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기존 60세였던 기준을 30년 만에 상향한 것이다.

배씨와 이씨 판결은 전원합의체 판단 이후 나온 첫 사례다. 대법원 관계자는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노동 가동연한을 65세 기준으로 다시 판단해달라는 상고심 사건이 상당히 많이 접수됐다”며 “관련 선고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류하경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는 “대법원 이외에도 일선 법원에서도 노동 가능 연한을 65세로 보는 판결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일반 기업에서는 아직도 정년 60세 기준으로 임금피크제 등이 시행되고 있어 노동자들의 불만이 많다”며 “사법부 판결에 맞게 사회도 변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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