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해줬는데 핀잔받는 나, 억울하다 억울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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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강인춘의 웃긴다! 79살이란다(14) 

[일러스트 강인춘]

[일러스트 강인춘]

“아휴~! 난 몰라. 이걸 설거지라고 해놓은 거야?
여기 그릇에 기름때가 그냥 남아 있잖아. 그리고 세제를 무조건
많이 묻힌다고 그릇이 깨끗이 닦아지는 건 아니라고
수십 번도 더 얘기했는데 왜 남자들은 하나같이 못 알아듣나 몰라!
당신, 손목 아픈 아내 도와준다는 생각일랑 버리고
이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는 주인의식으로 좀 성의 있게 해봐요.”

손목 관절염으로 밥 먹은 설거지에서 은퇴한 마누라는
오늘도 예외 없이 주방 싱크대 앞에서
앞치마를 입고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나에게 훈시 조의 핀잔을 퍼붓는다.

세상 여자들은 아니, 내 마누라 여자는 왜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말을
다듬지도 않고 바로 쏟아내는 것일까?

"어머~! 정말 그릇이 반짝거리네.
그런데 저 그릇 하나가 왜 심술을 부렸지?
당신 욕보이려고 얼루기가 지워지지 않았나 봐. 망할 넘!"
이렇게 슬쩍 돌려가면서 예쁘게 말했어도
내 가슴은 이렇게 벌렁벌렁 뛰진 않았을 텐데….

마누라의 아픈 손목으로 손수 팔 걷어붙이고 나선 나, 남편은
참으로 서운하기 짝이 없는 말이다.
그러지 않아도 점점 나이 들어 울적한 마음인데 마누라의 말 폭탄에
가슴 넓은 남자는 오늘 아침도 예외 없이 꾹꾹 눌러가며 참느라고 애쓴다.

마누라야!
당신과 같이 늙어가는 인생인데 조금 봐주면 안 될까?

강인춘 일러스트레이터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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