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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원전 수출 기회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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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 길에 올랐던 문재인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에서 원전 건설 제안을 받았다. 이 나라 실권자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은 지난 22일 문 대통령을 만나 “원래 화력발전소를 짓기로 했지만 환경적 관점을 고려해 원전 건설을 고려 중”이라며 “한국이 아랍에미리트(UAE)에 원전을 수출한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한국형 원전에 큰 관심을 보였다. 향후 카자흐스탄이 원전을 건설하기로 결정하면 한국이 수주전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이다.

국내에서 탈원전 정책을 본격화하는 와중에 외국에선 적극적으로 ‘원전 세일즈 외교’를 펼쳐 자가당착이라는 비판까지 받아온 문 대통령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에게 모처럼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카자흐스탄이 한국의 원전 기술력을 높이 사 처음으로 구매 의사를 밝히기는 했지만 실제 수출로 이어지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치열한 국제 입찰 과정에서 경쟁국을 압도하고 선택을 받으려면 기술력과 안전성에 대한 신뢰 확보가 필수적이다. 또 원전 건설 후 최소 30여 년에 달하는 가동기간 동안 제대로 유지·보수를 하려면 원활한 부품 공급과 전문 인력 확보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정부 방침대로 신고리 5·6호 건설이 완료되는 2021년 이후 한국에서 더이상 원전을 짓지 않게 되면 설계·건설·운영에 필요한 ‘원전 생태계’가 붕괴돼 경쟁력 약화가 불보듯 뻔하다. 탈원전이 원전 수주전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정부가 탈원전 고삐를 죈 이후 업계는 심각한 인력 유출에 몸살을 앓고 있다. 고급 전문 인력을 양성해온 대학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입학생 32명 중 이례적으로 6명이나 자퇴했다. 카이스트 역시 올해 전공을 결정하는 2학년 750여 명 가운데 원자력 및 양자공학 전공 선택자는 4명 뿐이었다. 2010년 이후 2016년까지는 매년 평균 20명이 선택했던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학문의 맥이 끊어지다시피 한 셈이다. 부품 등을 생산하는 관련 중소기업이 추가 공급처없이 계속 버티기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다.

이렇게 우리 스스로 원전 경쟁력을 갉아먹는 동안 경쟁국들은 지금도 원전 기술 발전에 매진하고 있다. 이대로 시간을 더 허비하다간 점차 벌어지는 기술 격차 탓에 원전을 짓고 싶어도 우리 손으로 짓지 못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자기 나라에서도 외면받는 산업을 선뜻 받아들일 나라는 없다. 정부는 현실을 지금이라도 똑바로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