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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센터 1명이 185명 관리···안인득은 목록에도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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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안인득, 어떻게 괴물 됐나<중> 

진주시 방화·살인 참사가 난 아파트 외벽을 새로 칠하고 있다. 주민들은 검게 탄 외벽을 볼 때마다 참사가 떠오른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진주시 방화·살인 참사가 난 아파트 외벽을 새로 칠하고 있다. 주민들은 검게 탄 외벽을 볼 때마다 참사가 떠오른다며 개선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정신질환자 관리의 핵심 인프라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이하 정신센터)다. 환자 사례 관리, 상담, 사회성 강화 프로그램 운영, 병원 진료 연계 등의 일을 한다. 이번 사건이 발생한 경남 진주에는 보건소 산하에 1곳 있다. 안인득은 2012년 진주 정신병원에서 6개월 입원 진료를 받고 퇴원했다. 2013년 법무부의 보호관찰이 끝났다. 2016년 7월 약물 복용을 중단했다. 어느 단계에서도 정신센터에 안인득의 인적 사항이 넘어오지 않았다. 정신센터가 손 쓸 방도가 없었다. 인적 사항을 넘길 근거가 없다. 만약 정신센터가 안인득을 관리했으면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

계약직 팀원 2명이 370명 담당 #“환자에게 머리 뜯기는 건 예사” #난동 소식에 경찰 없이 출동도 #지자체들 치매센터는 다 짓지만 #‘표 안되는’ 정신재활시설은 꺼려

◆환자에게 폭행 당해도 신고 안 해=정신센터를 뜯어보면 한계가 명백하다. 진주 정신센터는 370명의 정신질환자를 관리한다. 직원은 10명이고, 정신질환자 관리팀이 넷이다. 이달에 2명 늘었다. 지난달까지 1명이 185명을 맡았다. 10명 중 3명이 정규직 공무원이고 나머지는 계약직이다. 정신질환자 관리팀 넷 다 계약직이다. 공무원 신분이 아니다. 기존 2명은 이 일을 맡은 지 1년이 채 안 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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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병 환자가 폭력성을 띠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하지만 안인득 같은 폭력적인 환자가 있기 때문에 정신질환자 관리팀은 2명이 한 조로 움직인다. 진주 정신센터는 넷 다 여성이어서 조심스럽다. 진주 보건소 정신센터 박선아 주무관은 “환자한테 머리를 뜯긴 적이 있는데 이 정도는 예사다. 주먹으로 폭행 당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어지간하면 신고하지 않고 넘어간다”고 말했다. 어떤 환자가 대낮에 나체로 큰길 한복판에서 장독 뚜껑을 집어던진다는 신고가 들어와 경찰과 동행해서 제지한 적이 있다. 경찰 없이 나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국 정신센터는 243곳이다. 시·도에 16곳, 시·군·구에 227곳이다. 보건소 직영이 3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사회복지법인·병원 등에 위탁했다. 전북 장수·순창군, 전남 영암군 등 15곳에는 정신센터가 아예 없다. 올해 5곳을 설치하려고 추진 중이다. 2017년 기준으로 전국 센터 직원 중 정규직(무기계약직 포함)은 25%에 불과하다. 평균 근속연수가 정규직은 3.6년, 계약직·기간제 등의 비정규직은 2.9년이다. 정부가 지자체에 정규직을 채용하라고 독려하지만 지자체가 잘 따를지는 의문이다.

정신센터 운영비는 지자체가 일정 비율(진주의 경우 50% 부담)을 내야 한다(매칭 예산). 지자체에는 이게 부담스럽다. 전준희 정신건강복지센터협회장은 “보건복지부가 인력을 늘리라고 예산을 더 주려고 하는데 일부 지자체는 받지 않으려 한다. 매칭 예산을 마련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안인득 같은 정신질환자 관련 예산은 표가 안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지자체별로 정신센터 서비스의 질에 큰 차이가 난다. 전준희 회장은 “최근의 정신질환자 범죄는 정신건강 분야 투자를 게을리한 데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시·군·구 104곳 정신재활시설 ‘0’=시·군·구 정신센터는 인력 부족 탓에 야간이나 휴일을 커버하지 못한다. 광역 정신센터가 야간·휴일을 담당하지만 전화 상담만 한다. 경찰이 요청하면 정신센터 위기대응팀이 긴급 출동해야 하는데 이런 건 엄두를 못 낸다. 경찰의 공권력과 정신센터의 전문성이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서울·인천 등 5개 광역시만 출동팀을 두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정신센터는 오후 10시까지 위기대응팀이 작동한다. 전준희 회장은 “지방일수록 센터 구조가 취약하다. 그런 체계 안에서는 안인득을 걸러내지 못한다”며 “이대로 가면 1~2년 안에 더 큰 문제가 터지지 않을까 싶다”고 경고했다. 유제춘 대전광역정신건강증진센터장은 “지역사회 정신질환자 관리를 책임지는 유일한 데가 정신센터이다. 정신질환 위험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면 지금의 인력과 예산으로는 너무 부족하다”고 말했다.

관계기관 소통 없었던 안인득사건

관계기관 소통 없었던 안인득사건

정신재활시설도 크게 부족하긴 마찬가지다. 349곳이 있으나 수도권에 절반 넘게 몰려 있다. 104곳의 시·군·구에는 한 곳도 없다. 환자가 퇴원하면 이런 데서 직업재활 훈련을 하거나 일상 복귀 훈련을 해야 한다. 여기를 거치면 좀 더 빨리 독립생활을 할 수 있다. 중앙정부가 설치해 주려고 해도 지자체가 꺼린다. 운영비를 지자체가 부담하는데 이게 부담스럽다. 일선 시·도의 정신건강 정책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1~2명의 담당자만 있을 뿐 전담 조직이 없다. 안인득 사건이 발생한 경상남도는 직원 2명이 담당한다.

전국 지자체에 치매센터가 없는 데가 거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의 국가치매책임제 정책 덕분에 짧은 시간에 조직을 갖췄다. 반면 정신건강은 찬밥이다. 복지부에도 정신건강정책과밖에 없다. 예산도 국립정신병원 운영비를 제외하면 1700억원(복지부 예산의 0.23%)에 불과하다. 박연병 행정안전부 자치행정과장은 “최근의 정신건강 사고와 관련해 지자체장이 별도 조직을 만들고 담당자를 늘리려면 행안부에 요청하면 되는데 전국적 이슈인 만큼 복지부가 조직 신설과 확충을 요청하면 된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이승호·남궁민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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