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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인터넷은행 발목 잡는 '주홍글씨'…피해는 고객의 몫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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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출범 당시 서울 광화문에 등장한 케이뱅크 광고.[연합뉴스]

지난해 4월 출범 당시 서울 광화문에 등장한 케이뱅크 광고.[연합뉴스]

“금융 당국이 무책임하게 애를 낳았는데 혼인·출산 과정에 문제가 있다. 전 정부의 적폐를 청산해야 한다.”

2017년 9월 국회에서 열린 인터넷은행 관련 토론회에서 나온 말이다. 한 발제자는 ‘케이뱅크=적폐’라고 주장하며 인가 취소를 요구했다. 케이뱅크의 실질적 주인인 KT가 '최순실 사태'에 연루되면서 곤욕을 치르던 때였다.

인터넷은행에 붙었던 ‘적폐’의 주홍글씨가 이젠 사라졌나 했다.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힘을 보태면서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이 국회를 통과했기 때문이다. 산업자본의 은행 소유를 금지하는 '은산분리' 규제를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인터넷은행 지분(최대 34%)에 한해 완화하는 내용이었다.

이제는 ICT 기업이 제대로 주도하는 인터넷은행 시대가 열릴 수 있겠다는 기대를 했다. 그런데 너무 앞선 기대였는지 모르겠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17일 정례회의에서 “KT가 케이뱅크의 대주주가 되는 것을 승인해 달라고 신청한 건에 대해 심사절차를 중단한다”고 결정했다. KT가 담합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고 있다는 이유였다.

동시에 케이뱅크의 자본금 확충 계획도 보류됐다. 은행의 자본금이 부족하면 소비자로선 대출을 받기가 어려워진다. 실제로 케이뱅크는 최근 직장인K 등 일부 대출상품의 판매를 중단했다.

인터넷은행법은 최근 5년간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적이 있으면 대주주의 결격사유로 규정한다. 동시에 금융위가 공정거래법 위반 사항을 경미하다고 판단하면 대주주로 승인을 내줄 수 있다는 법 조항도 있다.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케이뱅크를 향한 공격은 이어지고 있다. 황창규 KT 회장이 정치권 로비 혐의로 검찰 수사까지 받으면서 KT·케이뱅크의 '적폐론'이 다시 불붙는 양상이다. 여론에 민감한 금융위가 재량권을 쓰겠다고 나설 수 있을지 미지수다.

정부는 금융을 혁신하겠다며 제3 인터넷은행의 예비인가 절차를 진행 중이다. '고인 물'인 은행권에 '메기(인터넷은행)' 여러 마리를 풀어 기존 은행까지 펄떡이게 만들자는 취지다. 그 경쟁으로 생길 이익은 모두 소비자의 몫이다. 더 많은 인터넷은행 서비스를 기대하는 이유다.

그런데 정작 2년 전 이미 풀어놓은 '메기' 하나는 적폐 낙인에 발목 잡혀 성장을 포기해야 할 위기다. ICT 기업이 인터넷은행에 더 투자하겠다는데도 막고 있는 판국이다. 과연 소비자를 위한 선택은 무엇일까. 금융위가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은 소비자의 권익이다.

한애란 금융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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