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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의 시선

이미선 후보자가 봐야 할 ‘긴즈버그’ 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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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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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많은 점에서 후보자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아마 후보자도 저에 대해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처신이 훌륭한(acquitted well) 인생을 살아왔다고 당신에게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 가족들의 처신도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생각에 동의 안 하지만 존경한다” #미 대법관 후보 야당도 자질 인정 #이 후보자는 본인 가치관 안 밝혀

대통령이 지명한 최고위 법관 후보자 청문회에서 야당 법사위원이 이렇게 말했다. 날카로운 질문으로 후보를 집요하게 괴롭힌 뒤 맺음말에서 존경심을 표현했다. 실화다. 경이롭고 감동적이다. 안타깝게도 우리 국회에서의 일은 아니다. 미국 의회에서 펼쳐진, 한국에선 ‘꿈 같은’ 장면이다.

때는 1993년 7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이 지명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연방 대법관 후보자 인준 청문회가 상원에서 열렸다. 긴즈버그는 성차별 폐지에 앞장선 법조인으로 당시엔 워싱턴DC 항소법원 판사였다. 지명 발표 뒤 야당인 공화당이 후보자에게 ‘급진적’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법의 정신을 수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위해 법을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청문회에서 공격의 선봉에 선 이는 법조인 출신 오린 해치 상원의원이었다. 그는 첫 질문에서 “당신은 헌법을 쓰여 있는 그대로 읽지 않고, 자기 생각에 맞춰 해석한다”고 비판했다.

미국 의회 도서관(www.loc.gov)이 소장한 속기록에 따르면 이틀간 늦은 밤까지 이어진 청문회에서 9명의 공화당 상원의원이 연방 대법원의 과거 판결에 대한 견해, 후보자가 관여한 재판의 과정, 개인적 행적 등을 놓고 질문을 쏟아냈다. 긴즈버그는 특유의 차분한 어조로 소신을 당당하게 밝혔다. 긴즈버그의 압승이었다. 서두에 인용한 발언이 해치 상원의원의 말이다. 그는 ‘가족의 처신’을 거론했는데, 변호사인 남편을 포함한 가족의 재산 형성 방법과 납세 기록 등을 모두 살펴봤다는 의미다. 대법관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 후보자 가족과 주변인도 검증 대상에 포함된다. 상원 인준 표결은 찬성 96, 반대 3으로 끝났다. 공화당 의원 47명 중 44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난민이나 이주민 문제에 대한 평소 생각은 어떤가요?”(금태섭 의원)

“제가 그 부분은 진지하게 생각을 못 해봤습니다. … 여러 가지 사회적 목소리를 다 수렴해서 난민·이주민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이미선 후보자)

이미선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는 법원 내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발기인이다. 설립 목적은 명칭에 쓰여 있듯 ‘국제+인권+법’ 연구다. 최근 이곳 출신들이 대법원장을 비롯한 법원 내 요직을 차지하면서 ‘권력 기구’처럼 보이게 됐지만, 국제적 시각에서 인권과 관련한 사법 사안을 고민해 보자는 게 회합의 본래 이유다.

“후보자가 서면으로 보낸 내용을 보면 기회주의적 답변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사형제 폐지는 긍정적, 낙태죄 폐지는 답변을 유보, 양심적 병역거부자 대체복무제도도 답변을 유보, 군대 내 동성애자 처벌도 답변을 유보, … 최저임금제, 종교인 과세 모두 다 답변 유보입니다.”(박지원 의원)

“관련 사건이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이기 때문에 입장을 밝히기에 조심스러운 측면이 있습니다.”(이 후보자)

결국, 헌법적 가치와 시대 정신이 맞물려 생기는 현실 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은 알 수 없었다. “재판관 소임을 맡으면 우리 헌법 정신과 가치를 충분히 실현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공정하고 바른 결정이 이뤄지도록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책무를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이 후보자의 최종 발언이다. ‘아무튼 열심히 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때마침 다큐멘터리 영화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 나는 반대한다’가 한국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긴즈버그가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理想)을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는지, 80대 여성 대법관이 어떻게 미국에서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시대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는지가 자세히 묘사된다. 이 후보자와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그리고 전수안 전 대법관에게 감상을 권한다. 전 전 대법관은 ‘부부 법관으로 경제적으로도 어렵게 생활하다가’라고 이 후보자를 변호했다. 이 후보자 남편 오충진 변호사가 법원을 떠난 2010년, 부부는 각기 9000만원 안팎의 연봉을 받았다. 그런 생각이 한국을 ‘존경받는 법관’의 불모지로 만든다.

이 영화엔 노인이 된 클린턴 전 대통령이 카메라 앞에서 긴즈버그 지명을 대표적 업적으로 자랑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후보 선택을 위한 인터뷰에서 15분 만에 훌륭함을 알아봤다고 한다. 대통령의 역사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