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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 맞은 듯 천장 구멍… "신이시여" 시민들 밤새 탄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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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비통하게 송가를 부르거나 나직하게 서로를 위로하는 사람들. 16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앞은 전날의 화마가 남긴 상처로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바리케이드가 쳐져 출입이 통제된 상태에서 대성당의 상징인 남측 '장미 창' 쪽으로 소방차 사다리가 올라간 게 보였다. 불길을 잡은 상태에서 파손 여부를 점검하는 듯했다.

16일(현지시간) 화재가 진압된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습. 성당의 상징과도 같던 첨탑은 불길에 소실되고 지붕의 3분의2가 날아간 채 외벽도 검게 그을린 모습이다. [AP=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화재가 진압된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모습. 성당의 상징과도 같던 첨탑은 불길에 소실되고 지붕의 3분의2가 날아간 채 외벽도 검게 그을린 모습이다. [AP=연합뉴스]

불길이 시작됐던 비계(공사용 임시가설물) 인근 외벽은 검게 그을린 채 전날의 상흔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만 대부분의 외벽과 쌍탑 등은 외관상 큰 피해가 없어 보였다. 대성당 인근에 산다는 63세 여성 카트린은 "매일 아침 산책하며 지나다닌 곳이다. 첨탑이 무너지는 것을 보며 내 마음이 흔들렸다"고 본지 기자에게 말했다. 기자가 "대성당이 당신에게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간결하게 "영혼(프랑스어 âme)"이라고 답했다.

800년 된 참나무 뼈대 모두 불타 #15시간 만에 진화, 내부 피해 심각 #현장 찾은 마크롱 "국민 함께 재건" #교황청 "끔찍한 화재 충격과 슬픔"

건물 외부만큼 내부 피해도 심각하다고 한다. 이날 오전 로이터통신 등이 공개한 사진을 보면 폭탄이 떨어진 듯 성당 천장에 커다랗게 구멍이 뚫렸다. 석재로 된 벽은 검게 그을었다. 미처 열기가 식지 않았고 바닥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소방 관계자들과 함께 불탄 성당 내부를 둘러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망연자실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850여 년 역사의 인류 유산을 삼킨 불길은 15일 오후 6시50분쯤 첨탑 보수 공사를 위해 세워진 비계의 상부 쪽에서 처음 치솟았다. 순식간에 검은 연기가 하늘을 덮었고 불길은 수많은 목재로 이뤄진 지붕 구조물 내부로까지 번졌다.

화재 발생 한 시간 만에 하늘을 향해 치솟았던 96m 높이 첨탑이 힘없이 무너지자 현장 인파들 사이에서 "신이시여"라는 비명이 터졌다. 첨탑과 지붕의 3분의 2가 소실됐으며 800년 이상 된 참나무로 만들어진 대성당 나무 뼈대의 상당수와 내부 목조 유물 등이 불에 타 사라졌다. BBC 등 외신에 따르면 대성당 주변의 다리에 몰려들었던 파리 시민들과 관광객들은 눈물과 함께 성가 ‘아베 마리아’를 합창했다. 파리에 거주하는 티보 비네트뤼는 CNN에 “노트르담 대성당은 아주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는데 순식간에 절반이 사라졌다”며 충격을 토로했다.

15일 밤 파리 시민들이 불타는 노트르담 성당을 바라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15일 밤 파리 시민들이 불타는 노트르담 성당을 바라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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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언론에 따르면 프랑스 소방 당국은 이날 오전 3시30분쯤 주불을 진화했으며 이후 6시간에 걸쳐 잔불 정리 작업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소실된 대성당 첨탑은 프랑스어로 ‘플레슈(flèche)’라고 불리며 13세기 초 처음 만들어졌다. 화재 및 풍상에 취약한 구조라서 18세기 말 전면 철거됐다가 19세기 중반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통해 새로 세워졌다. 150년 세월 동안 다시 부식되면서 최근 프랑스 정부는 600만 유로(약 78억원)를 투입해 첨탑 개보수를 진행해 왔다. 그나마 13세기에 지어진 쌍둥이 종탑과 건물 골조 등은 그대로 남아 최악의 사태는 피한 것으로 보인다.

화재 신고 즉시 400여 명의 소방관이 투입돼 진화 작업에 들어갔다. 소방차 수십 대가 출동해 고압 호스로 지붕과 성당 내부에 물을 분사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다행히 서쪽 정면(파사드)에 있는 두 개의 석조 종탑까지 불이 번지지는 않았다. AFP 통신은 “프랑스 소방관들이 수시간이 넘는 긴 싸움 끝에 노트르담 대성당의 메인 빌딩(본관)을 구했다”고 보도했다. 화재 진압 과정에서 소방관들과 경찰관, 성직자들이 ‘인간사슬’을 만들어 성당 내부의 유물들을 밖으로 옮겼다. 화재 진압 과정에서 소방관 1명이 중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목재 비계 타고 불길 번져…‘방화’ 가능성 낮아

1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성당 내부가 화재로 검게 그을려 있다. 성당 전체가 큰 피해를 보았지만 다행히 서쪽 정면에 있는 두 개의 석조 종탑까지 불이 번지지는 않았다. [EPA=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성당 내부가 화재로 검게 그을려 있다. 성당 전체가 큰 피해를 보았지만 다행히 서쪽 정면에 있는 두 개의 석조 종탑까지 불이 번지지는 않았다. [EPA=연합뉴스]

 화재 원인 조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프랑스 소방 당국은 방화 등 범죄와는 관련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당국이 이번 화재를 사고에 의해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목격자들을 인용해 “첨탑 보수공사를 위해 세워진 비계의 상부 쪽에서 불길이 처음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불씨는 첨탑 주변으로 촘촘히 얽힌 나무 비계를 타고 퍼진 것으로 보인다. 건물의 손상을 우려해 철재가 아닌 나무 비계를 쓴 것이 불이 번지는 속도를 키웠다는 것이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15일 오후 8시로 예정됐던 대국민 담화를 전격 취소한 채 화재 현장으로 향했다. 현장 이동 전 그는 트위터에 “매우 슬프다. 우리의 일부가 불탔다”고 적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또 화재 당일 밤 긴급 담화를 발표해 쌍탑과 파사드를 살리기 위해 분투한 소방관들의 노고를 평가하면서 “그들의 용기 덕분에 최악의 상황을 피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노트르담은 우리의 역사이자 문학, 정신의 일부이자 위대한 사건들이 일어난 장소, 그리고 우리의 삶의 중심”이었다면서 국민들의 힘을 모아 파괴된 성당을 재건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교황청 “파리 시민들과 연대할 것”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노트르담 대성당은 1163년 공사가 시작돼 1345년 완공된 프랑스 고딕 양식 건축의 대표작이다. 빅토르 위고가 1831년 쓴 소설 『노트르담 드 파리』의 배경이며, 180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대관식이 열린 곳이기도 하다. 유네스코는 노트르담이 있는 센 강변 일대를 199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

 매년 1200만∼1400만 명이 찾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작가이자 역사전문가인 베르나르 르콩트는 이날 프랑스 BFM 방송에 출연해 “만약 에펠탑이 파리 도시라면,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라는 나라와 같다”며 “노트르담은 그 안에 새겨진 프랑스의 역사와 문화 전체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 정치·종교계 주요 인사들도 안타까움을 표했다. 교황청 공보실은 긴급 성명을 내고 “노트르담 성당을 파괴한 끔찍한 화재 소식에 충격과 슬픔을 느낀다”며 “프랑스 가톨릭 교회와 파리 시민들에게 우리의 연대를 표한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에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발생한 엄청나게 큰 화재를 지켜보려니 너무 끔찍하다”고 적은 후 몇 시간 뒤 “프랑스 국민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이라고 위로를 전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도 트위터에 “오늘 밤 프랑스 국민, 노트르담 대성당의 끔찍한 불길과 맞서는 긴급구조대와 마음을 함께 한다”고 썼다. 문재인 대통령도 이날 마크롱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위로의 뜻을 전달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파리=김성탁 특파원, 서울=이영희·심새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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