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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사고 당한 차, 중고차 시세 하락분도 배상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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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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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교통사고를 당한 차량의 경우 자동차손해보험사 약관의 지급 기준과 관련 없이 중고차 시세하락에 따른 손해를 보상받을 수 있다는 대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피해차량 차주인 박모씨가 가해 차량 보험사인 DB손해보험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중고차 시세 하락분 배상 책임이 없다”고 한 원심판결을 깨고 수원지법으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고 16일 밝혔다.

새 차인데 ‘사고 차량’ 낙인…345만원 더 보상해라

지난해 1월 박씨는 대전의 한 도로를 달리다 뒤따르던 차량에 자동차 뒷부분을 들이받히는 사고를 당했다. 뒤따르던 차량 운전자가 전방 주시 의무를 게을리한 것이다. 새 차를 산 지 5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 사고로 박씨 자동차는 뒤쪽 범퍼와 트렁크 문짝, 트렁크 바닥 패널 등 자동차 뒷부분이 파손됐다. 가해 차량 운전자의 보험사인 DB손해보험에서는 수리비용으로 376만 5789원을 박씨에게 지급했다.

박씨는 수리비를 받았지만 억울했다. 차를 출고한 지 5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박씨의 차는 이제 중고차 시장에서 사고 차량이 됐다. 더구나 파손된 부분은 중고차를 팔때 발급받는 ‘중고차 성능 기록부’에 반드시 표시돼야 하는 중요 부분이었다. 박씨는 별도로 차량기술사에게 이 사고로 얼마나 중고차 가격이 떨어질지 감정을 의뢰했고, 손해액이 312만원이라는 답을 받았다. 박씨는 이 손해액과 감정서 발급비용 33만원을 합한 345만원을 보험사에 추가로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다.

”배상의무 없다“ 본 1ㆍ2심, 이를 뒤집은 3심

1심과 2심은 보험사가 박씨에게 중고차 시세 하락분을 보상하지 않아도 된다고 봤다. 1심은 파손 정도 등을 종합해볼 때 “차량에 원상회복이 불가능한 가치 하락이 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는 원상복구를 못 할 정도로 손상의 정도가 중하다고 봤지만 이를 보험사에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가해 차량 운전자와 보험회사가 맺은 자동차보험 계약 보험약관 지급기준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동차 보험계약 약관은 수리비용이 차량 가격의 20%를 초과해야 중고차 시세 하락 비용을 지급한다고 규정하는데, 박씨 차량은 차량 가격(약 3000만원) 대비 수리비 비율이 12.8%였다.

대법원, “박씨는 보험 가입자 아니니 자동차보험약관 따를 이유 없어”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피해자 박씨는 보험 회사와 계약을 맺은 당사자가 아니므로, 보험 약관 지급 기준에 따라 손해배상액을 산정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보험사에 박씨 차량의 중고차 시세 하락 감소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며 손해액은 보험사의 책임 한도액 내에서 법정에서 새로 따져봐야 할 문제라고 판결했다.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는 “대법원의 판단 취지는 정확하다”며 “보험약관 기준에 맞지 않으면 소송을 통해 중고차 가격 하락을 보상받을 수도 있지만, 피해자들이 대부분 소송 비용 때문에 이를 포기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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