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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요? 아직 법 바뀐 거 아닙니다.그래도 다 해주니까 일단 오세요"

중앙일보

입력

&#34;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환영&#34;...시민단체 도심서 축하 집회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11일 시민단체 &#39;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39;이 주최한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환영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주최측 발언을 듣고 있다. 2019.4.11   juju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34;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환영&#34;...시민단체 도심서 축하 집회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11일 시민단체 &#39;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39;이 주최한 낙태죄 헌법 불합치 결정 환영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주최측 발언을 듣고 있다. 2019.4.11 jujuk@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아직 법 바뀐 거 아닙니다. 그래도 다 (낙태)해주니까 일단 내원(병원 방문)하세요."

12일 서울 서초구의 한 산부인과에 "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느냐"고 문의하자 이렇게 답했다. 이어 "상담 전담 실장이 따로 있다"면서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줬다. 실장과 통화하자 "낙태는 물론 가능하다"면서 "남자분과 함께 신분증을 갖고 내원해 초음파부터 찍자"고 안내했다. 그는 "내가 소개한 병원에서 수술하면 초음파 검사 비용은 무료"라며 "임신 8주가 지났으면 수술비가 100만원이 넘고, 6주 이하면 70만원이다. 현금 결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낙태가 합법화 된 거냐"고 묻자 "불법이어도 다 해주니 걱정하지 말라. 강남에 있는 유명한 병원으로 소개하겠다"고 안심시켰다.

헌재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산부인과 조심스런 분위기 여전 #직접 상담 꺼리고 브로커 통해야 #SNS선 임신중절약물 도입 주장도 #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산부인과는 종전처럼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일부는 환자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인터넷에서도 달라진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낙태가 가능한 또 다른 산부인과를 찾기 위해 인터넷과 SNS에서 '낙태' '임신중절'이라는 단어를 입력하자 '비밀보장' '여의사 상담' 등의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이 줄줄이 나왔다. 적합한 병원을 소개하는 브로커도 여럿 있다.

또 다른 브로커에게 문의하자 경기도 고양시의 산부인과를 추천했다. 그는 "남자분 동의만 있으면 (수술이) 가능하다"면서 내원을 권했다. 또 "수술 당일 바로 회복한다. 영양제 수액 주사를 맞으면 빨리 회복한다"고 말했다.

맘카페 등에서 낙태 수술을 쉽게 받을 수 있는 병원으로 자주 언급된 인천의 한 산부인과로도 연락했다. 상담을 요청하자 "낙태 수술 상담은 반드시 내원해야 한다"면서 전화·SNS 상담을 거부했다.

취재진이 서울·경기·인천의 산부인과 10여곳을 확인했더니 대다수가 조심스런 모습이었다. 브로커를 통하지 않으면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다"고 상담을 거부했다. 브로커의 소개를 받은 병원에서는 비용과 수술 옵션까지 상세히 안내했다.

헌재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했지만 세부 규정 마련, 법률 개정은 내년 12월 31일이 기한이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법제이사는 "아직 법적으로 변화가 없어 병원의 낙태 상담과 수술에는 큰 변화는 없다"면서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일부 산부인과에서 운영하는 '비밀 상담방'이나 브로커를 활용하는 '비밀 병원'이 점차 사라질 것"으로 말했다.

약물 관심도 커진다. SNS에서는 임신중절 약물인 '미프진'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미프진은 임신 50일 이내에 복용하면 낙태가 가능한 약이다. 2005년 세계보건기구(WHO)가 지정한 필수 의약품 목록에 포함됐다. 낙태가 불법인 한국에서는 미프진을 수입할 수도, 처방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미 해외 구매 대행 등을 통해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법 개정 전에 미프진 국내 판매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녀 셋을 뒀다는 김모(36)씨는 "자녀 계획은 이미 끝났는데, 행여 원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될까 항상 노심초사한다"면서 "미프진을 합법적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되면 한결 마음이 놓일 것 같다"고 말했다.

사후피임약(응급피임약)을 찾는 고객도 늘고 있다. 서울 송파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박기범 약사는 "사후피임약은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아와야 구매할 수 있는데 몇몇 손님들이 '이제 그냥 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항의해 난감하다"고 말했다.

[그래픽] 헌재 &#39;낙태 자기결정권&#39; 한도 제시

[그래픽] 헌재 &#39;낙태 자기결정권&#39; 한도 제시

의사들은 낙태 합법화의 취지에는 대체로 찬성하면서도 안전한 피임 교육, 낙태 전후 상담 등을 강화하자고 제안한다. 권소영 리즈산부인과 원장은 "헌재 결정 관련 기사에 '앞으로는 콘돔 안 쓰고 여친 낙태시키면 되겠다' '피임 안 해도 되니 편하다'와 같은 댓글이 다수 달려 놀랐다"면서 "피임의 중요성과 낙태의 위험을 집중적으로 교육해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재연 법제이사는 "낙태를 막기 위해서는 새로운 규제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낙태하려는 여성을 지원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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