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전원회의서 ‘핵’은 없었다…‘자력갱생’만 25차례 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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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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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0일 열린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자력갱생’을 25차례 언급했다. ‘경제’에 대한 언급은 17차례 나왔다. 이날 전원회의는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북한의 향후 정책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자리였다. 북한 매체가 보도한 김 위원장의 발언으로 미뤄볼 때 북한은 일단 비핵화 협상 궤도에서 이탈하진 않되, 내부 자력갱생을 바탕으로 하는 경제 총력전에 매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벼랑끝 대미 도발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미국의 비핵화 요구를 수용하지는 않는 대미 참호전이다.
이날 공개된 내용으로만 보면 전원회의에선 핵 관련 발언이 한 차례도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4월 20일 전원회의 직후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결정서에선 핵무력·핵무기 등 핵 관련 언급이 17차례 나왔다. 당시는 핵무력 완성을 선포하면서도, 4·27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기존의 핵·경제 병진노선을 경제건설 집중 노선으로 변경하는 게 주된 회의 안건이었다. 당시 경제는 6번 언급됐지만, 자력갱생은 한번도 거론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2012년 집권 후 총 5차례 전원회의를 소집했는데 ‘핵’ 언급을 하지 않은 건 올해가 처음이다.

김정은 집권 후 5차례 전원회의 #핵 언급 0회는 이번이 처음 #"도발 없다고 핵 포기로 봐선 곤란"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했다고 10일 보도했다.[노동신문]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했다고 10일 보도했다.[노동신문]

당초 북·미 정상회담 결렬 후 교착 국면에서 비핵화 협상 중단 또는 핵·미사일 개발 복귀 같은 김 위원장의 ‘중대 입장’이 발표될 수 있다는 관측이 있었지만 이날 보도로만 보면 당장은 판을 깨는 선택은 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대미 강경 발언은 전원회의 모두에서 한 두 마디 정도가 전부다.
김 위원장은 “최근 진행된 조미(북미)수뇌회담의 기본취지와 우리 당의 입장”에 대해 밝히면서 “우리나라의 조건과 실정에 맞고 우리의 힘과 기술, 자원에 의거한 자립적 민족경제에 토대하여 자력갱생의 기치높이 사회주의건설을 더욱 줄기차게 진전시켜나감으로써 제재로 우리를 굴복시킬 수 있다고 혈안이 되어 오판하는 적대세력들에게 심각한 타격을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떤 입장을 밝혔는지 공개하지 않았다. 아울러 ‘적대세력’ ‘심각한 타격’ 등의 발언은 했지만 대상과 방법을 모호하게 표현해 수위 조절을 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했다고 10일 보도했다.[노동신문]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했다고 10일 보도했다.[노동신문]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이 현상유지 내지는 전략적 인내에 돌입했다는 관측에 무게를 뒀다. 김 위원장이 전원회의에서 “사회주의건설에서 이룩한 괄목할 성과들을 통해 우리 노선이 천만번 옳았다”라거나 “자력갱생과 자립적민족경제는 우리식 사회주의 존립의 동력이고 우리 혁명의 존망을 좌우하는 영원한 생명선”이라고 말했다는 걸 지목했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하노이회담 결렬 원인인 비핵화 조치에 대해선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은 채 자력갱생만 강조하고 있다”며 “인사 등 조직정비로 내부 기강을 잡으며 제재 장기화에 대비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국제사회의 제재에 대해 ‘적대세력’ ‘심각한 타격을 주어야 한다’고 표현한 것은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라며 “미국과 제재 보조를 맞추면서 현 국면을 타개하려던 정부로선 대응책 찾기가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단 김 위원장이 핵을 거론하지 않았다고 해서 핵포기를 시사한 건 결코 아니라는 게 대북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신 센터장은 “김 위원장이 핵을 강조하지 않은 이유는 북한의 경제건설 노선이 핵보유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이라며 “도발 메시지도 없지만 핵포기도 없다는 입장으로 보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했다고 10일 보도했다. [노동신문]

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9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 청사에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를 주재했다고 10일 보도했다. [노동신문]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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