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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간 모정…딸 시켜 친구들에게 5억원 뜯은 모녀사기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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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연합뉴스]

“우리 엄마 회사에서 알바할래? 알바생으로 등록해놓고 한 달에 한 번 메시지만 보내주면 40만원 줄게.”
연극 교실에서 만난 지모(23)씨는 이제 갓 성인이 된 한모씨에게 자신의 어머니 회사 아르바이트 자리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지씨는 “알바생으로 등록하면 회사의 큰돈이 네 계좌로 들어갈 텐데, 혹시 네가 이 돈을 갖고 도망갈 수 있으니 만약을 대비해 네 명의로 대출을 받아놓자. 대출금은 회사에서 모두 갚을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대출이라는 말에 망설이는 한씨에게 지씨는 “네가 믿을 만한 친구라고 들어서 좋은 알바 자리 소개해주는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한씨는 제2금융권에서 신용대출을 받아 1500만원을 건넸고, 몇 달 들어오던 알바비와 대출 이자는 이내 끊겼다.

10일 서울동부지법에 따르면 이른바 땡처리 의류를 필리핀에 수출하는 사업을 해온 이모(44)씨는 회사가 어려워지자 딸 지씨와 함께 20세가량의 사회경험이 적은 딸 친구들을 상대로  대출금을 가로채기로 공모했다.

지씨는 대학 면접 과정에서 알게 된 친구와 펜팔로 알게 된 친구 등 3명에게 “간단히 전화 받는 알바를 하면 알바비를 주겠다”며 “대출을 받아주면 회사에서 3개월 이내에 갚아줄 텐데, 그럼 알바비를 더 주겠다”고 속였다. 의심하는 피해자에게는 “내가 회사에서 높은 직책에 있어 알바생을 쓸 수 있고, 직원으로 이름을 올려두면 세금을 덜 낼 수 있어서 알바를 구하는 것”이라고 둘러댔다.

피해자들은 사회 초년생이기에 제2금융권에서 신용대출을 받아 적게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1700만원을 지씨 통장에 입금했다. 하지만 어머니 이씨는 대출금을 대신 갚을 능력은커녕 2012년부터 세금 체납 등으로 본인 명의로 대출을 받거나 계좌를 개설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1심 재판부는 지난 4일 “죄질이 불량하고 피해자들의 피해도 전혀 회복되지 않았다”며 어머니 이씨에게 징역 8개월, 딸 지씨에게는 징역 4개월의 선고를 내렸다.

알고 보니 모녀는 지난해 11월에도 서울동부지법에서 비슷한 수법으로 34명에게 5억2800만원에 이르는 대출금을 가로챈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어머니 이씨는이 밖에도 사기 전력이 3차례 더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모녀는 당시 법정에서 “피해자들에게 대출금이 사업자금으로 사용된다는 것을 설명했고, 피해자들도 이를 알면서 돈을 지급한 것”이라며 일종의 투자금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약속한 알바비와 대출이자도 성실하게 지급하던 중 갑자기 사업이 어려워져 채무를 갚지 못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34명의 피해자가 일관되게 손쉬운 알바를 하는 것으로 알았고, 형식적인 대출을 받는 것으로 알았다고 말한다”며 “알바가 아니라 투자라는 설명을 들었다면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은 사회 초년생들이 이씨 사업에 대출을 받아 투자했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봤다. 이어 “피해자들이 대부업체들로부터 추심을 당할 위험에 노출됐으나 모녀는 이 돈을 생활비 등 개인적 용도에 사용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어머니 이씨에게 “범행을 부인하면서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나이 어린 딸을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시켰으며 이전에도 사기 범행 전력이 여러 차례 있는 점 등에 비춰 상당한 처벌을 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징역 4년 형을 선고했다. 딸 지씨에 대해서는 “자신과의 친분이 있는 다수의 피해자를 상대로 신뢰를 저버리고 범행한 점에 있어 죄책이 무겁다. 그러나 어머니의 범행에 가담하는 것을 거부하기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징역 1년형을 내렸다. 모녀는 형이 가혹하다며 항소해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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